사람도 소 꼴 난다

  • 입력 2014.06.29 00:5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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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축산업은 태생적으로 사료원료 수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사람 먹을 곡식도 빠듯했던 60~70년대 축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원료곡물 수입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료업계의 수입의존 구조가 굳어지고 밀과 같은 국내 사료곡물 생산기반이 취약해진 마당에 획기적인 구조 개선은 사실상 힘들다.

2000년대 중반 이래 축산업은 심각한 붕괴 위기에 처했다. 배합사료 원료의 실질적인 수입의존도가 95%에 달하는 탓에 국내 사료가격은 국제곡물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을 피동적으로 좇아갈 수밖에 없다. 원료의 품질은 떨어졌지만 사료가격은 6~7년 사이에 심하게는 세 배 가까이 치솟았고, 적자가 거듭되는 축산 현실에 축사 운영 자체가 힘든 실정이다.

지난해 한우에 폐업지원금이 적용되자 전국 한우농가의 10% 이상이 문을 닫았다. 현장을 다녀보면 지난해 폐업지원금 신청을 못해 아쉬워하거나 아직까지 폐업을 벼르고 있는 농가들도 많아 올해 폐업지원금도 신청이 줄을 이을 것으로 우려된다. 식량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소들의 말로는 축주의 ‘사육 포기’다.

정부가 끝내 쌀 관세화를 강행할 태세다. 쌀의 의미와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농민들의 처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설명회와 공청회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마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양 포장해 관세화를 맞아들이려 하고 있다.

이러다 사람도 소 꼴 난다. 그 동안에도 모진 풍파를 견뎌내며 쌀을 지켜온 농민들이 있기에 우리 쌀이 사료처럼 당장 90% 이상이나 수입산에 자리를 내줄 일은 없겠지만, 식량주권은 야금야금 침식당하고 홀대 속에 우리 농업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 정말로, 이러다 사람도 소 꼴 날 수 있다.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보장하는 식량산업은 결코 다른 산업과 같은 잣대로 바라봐선 안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식량산업 보호를 뒷전으로 미루다가는 축산업을 대규모 위주로 구조조정하듯 국민도 대기업 재벌만을 남기고 구조조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재벌들 역시 안전하고 질 좋은 먹거리를 보장받을 수 없을 뿐더러, 먹고 살기 힘들어질 서민들에게는 과연 ‘폐업지원금’이라도 한 푼씩 돌아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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