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으로 유지되는 벼 수탁수매

정부, 수매자금으로 농협 옭죄 … 쌀값 변수 농민에게 전가

  • 입력 2013.11.03 22:22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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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쌀 시장이 개방되어 가공용 쌀이 수입되고 아울러 정부 수립 이후 56년간 양곡정책의 중심인 추곡수매제도가 2004년 폐지된다.

이후 새로 도입된 제도가 공공비축 수매제도이다. 공공비축 수매제도는 과거와 같은 소득보전과 가격안정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비축을 위한 제도이다. 그래서 생산자들을 위한 소득보전의 효과는 전무하고 소비자를 위한 가격안정(인하?)에만 기여할 뿐이다. 이때부터 양곡정책은 정부의 손을 떠나고 시장과 농협에 맡겨지게 됐다.

농협은 90년대 이후에 대대적으로 RPC(rice processing complex 미곡종합처리장)를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쌀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농협의 쌀 사업은 초기에는 수익이 남는 듯 했다. 그러나 경영능력 부족과 정부의 쌀 전면개방을 대비한 쌀값하락 정책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수탁형 계약재배인 것이다.

이 제도는 수확기에 쌀값을 정하지 않고 농협이 농가의 쌀을 인수하여 단경기(다음해 2~3월)에 농민이 원하는 시기에 시가로 정산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겉보기에는 농민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제도인 것처럼 보인다. 정부 역시 아주 좋은 제도로 믿고 있다. 쌀은 수확기에 일시적으로 많은 양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공급량이 넘쳐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를 지난 이듬해 2~3월이 되면 쌀값은 자연 상승한다.

쌀값이 하락하는 수확기에 수매가 결정한다고 농협과 농민이 실랑이 하지 않고 이후에 쌀값이 상승한 단경기에 오른 가격으로 쌀값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론상 아주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최근 5년간 월별 쌀값 변동추이를 보면 수확기 대비 2~3월 쌀값이 거의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내려간 경우도 있고 올라야 80kg한 가마에 1천원을 넘지 못했다. 가장 많이 오른 해는 쌀이 부족했던 2011년이 유일하게 1만 원 정도 올랐지만 이마저도 정부가 3월부터 집중적으로 공매에 들어가 더 이상의 쌀값이 상승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탁형 계약재배는 도입취지와 달리 농민들에게 이익이 될 수 없다. 도움은커녕 정산시기가 늦으면서 발생하는 기회손실(금융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더불어 수확기 낮은 사전지급금(수매가의 80% 이하)으로 쌀값하락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농민들에게 손해를 주게 하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 농촌현장에서는 서류상으로만 수탁수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의 계획은 2010년부터 농협수매량의 15%에서 매년 5% 늘려나가 2019년에는 농협수매량 100%를 수탁 수매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수매자금지원 중단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에 농협 입장에서는 서류상으로나마 수탁수매를 맞춰 놓아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농협은 “모든 농산물을 다 수탁 형태로 취급하고 있다. 일본,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수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쌀 역시 수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농협의 수탁방식 농산물 판매 사업은 협동조합정신에 맞지 않는 제도이다. 현재 농협은 농산물 판매 능력이 떨어져 자체적으로 소비자 판매를 못하고 도매시장이나 대형마트등 민간 유통에 의존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니 농협 본연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계약재배 즉 매취사업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탁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농협의 무능력을 결국 쌀에도 전가하여 수탁을 주장하는 것은 협동조합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정부도 쌀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의 쌀 정책은 국민의 기초식량인 쌀을 농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한국농정은 이번 호에서 향후 쌀 산업에 위기를 초래하게 될 벼 수탁형 계약재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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