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부터 수탁수매까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15년전과 같은 수매가… 농가소득 지속적으로 하락

  • 입력 2013.11.03 21:24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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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면서부터 농가소득이 추락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도입한 공공비축제도, 농협 수탁수매는 농가소득의 하락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쌀 수매 전 나락을 건조시키고 있는 한 농민의 모습. <한승호 기자>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국제 곡물가격 폭등으로 식량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주곡인 쌀 만큼이라도 안정적으로 자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사회적으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려면 우선, 쌀 생산 농가의 소득보전을 통한 안정적인 생산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WTO를 이유로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던 2005년 이후부터 쌀값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도입된 공공비축제도의 변질, 농협의 수탁수매 과정을 거치면서 쌀 생산농가들의 소득은 현재 바닥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농민을 위해 만들었다는 정책들이 오히려 농민들의 목을 죄여오고 있는 상황.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지금까지의 쌀 농업 정책을 되짚어보려 한다.

추곡수매 폐지, 추락하는 농가소득

1969년 농가소득 증대와 더불어 농민들의 증산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 추곡수매제가 도입됐다. 추곡수매제란 정부가 양곡 확보와 가격조절을 목적으로 농민에게 직접 추곡을 수매하는 제도로, 수확기 홍수출하를 방지해 가격 안정을 시키는 고유한 기능이 이 제도의 큰 장점이다.

정부는 농가소득 증대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 수매규모를 계속 확대하고 수매가격도 대폭 인상했다. 정부의 쌀 수매량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총 생산량의 10%뿐이었지만 1971년부터 10%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1973년 후반 이중곡가제를 강화하면서 도입 이후 주곡의 획기적 증산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통일벼 재배가 최고조에 달한 1977년~1979년에는 23.4%의 수매비율을 보이기도 했다. 1997년에는 25%의 수매비율을 달성했다. 추곡수매제도를 통해 쌀값 안정과 더불어 쌀 수급조절 및 농사 소득증대에 기여를 한 것이다.

* 이중곡가제도란?

정부가 쌀, 보리 등 주곡을 농민으로부터 비싼 값에 사들여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제도를 일컫는다. 구입가격과 판매가격의 차액만큼이 정부의 재정지출로 이루어져 차액보전에 따른 적자 누적으로 재정적자가 발생하게 된다. 식량증산, 농가소득증대, 소비자 가계보호, 물가안정이라는 정책목표는 달성했으나 재정적자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중곡가제를 이유로 정부는 추곡수매를 폐지하게 된다.

그러나 쌀 생산비에 소득보상까지 감안한 이중곡가제가 실시되면서부터 재정적자가 쌓여 갔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의해 양곡수매에 따른 총 보조상당액(AMS)을 매년 일정 수준 감축해야 하기 때문에 현행 수매제도를 유지하면 2003년 이후에는 농가소득지지는 물론이고 적정비축물량 확보마저 불투명한 실정이었던 것. 때문에 정부는 점차 추곡수매를 축소, 2005년 이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쌀값은 다시 불안정한 구조로 바뀌고 2008년 MB정권이 대북 쌀 지원마저 중단하면서 과잉재고 문제까지 발생했다.

이같은 과잉재고가 누적되면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쌀값 폭락 대란이 일어나게 된다. 2010년도에는 단경기에도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최근 쌀값은 1995년~1996년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농가소득 및 농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됐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를 시행했으나 제도 자체의 한계로 농가소득 감소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첫해 고정직접지불 규모는 2004년 마지막 추곡수매를 통한 소득지원과 비슷한 규모가 되도록 목표가격과 기준가격을 정했고, 변동직접지불은 시장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떨어질 경우에만 그 차액의 85%를 보전하도록 설계됐다.

소득보전을 위해 직불금을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목표가격 자체를 2001년~2003년 쌀 농가 소득수준인 80kg당 17만83원으로 결정해 이를 넘기지 못하게 해놓은 것이다.

또한 수확기 쌀값 하락에 따라 목표가격을 계속 인하하도록 설계해 시작부터 쌀 농가의 소득하락은 예견됐다. 즉, 쌀값이 하락할 때 아무리 변동직불금을 지급해도 농가에 돌아가는 소득은 2001~ 2003년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의미다.

또한, 이러한 계산조차도 변동직불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수확기 가격이 단경기 가격보다 높다는 전제하에 성립됐기 때문에 농업소득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현행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은 과거 추곡수매에 비해 농가소득 지원 규모가 대폭 축소된 2005~ 2006년 소득지원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농협경제연구소 역시 올해 초 ‘쌀 농가 소득실태와 시사점’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 쌀 농가들의 소득 하락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

연구소는 2005년 이후 쌀소득보전직불제가 시행되고 있으나 쌀소득은 추곡수매제 폐지 이전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폐지 전후 각 7년간의 평균 쌀소득을 비교하면 1998~2004년 80kg당 11만6,214원이었으나 2005~2011년은 쌀직불금을 포함해도 10만5,591원으로 9.1%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소득 및 농외소득 등을 포함한 쌀 농가의 호당 소득도 2005년 2,265만원에서 2011년 1,971만원으로 13%나 감소했다. 또한 쌀농가의 호당 소득 대비 가계비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2010년과 2011년에는 가계비가 소득을 초과해 가계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비축제도 변질, 쌀값 하락에 불 지펴

정부는 추곡수매제와 동시에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공공비축제를 도입했다. 이는 전쟁과 흉년 등에 대비해 단순히 재고 쌀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가에 사고팔기 때문에 WTO가 허용하고 있다.

공공비축제는 정부가 일정 분량의 쌀을 시가로 매입해 시가로 방출하는 제도로, 쌀 수급을 시장에 맡기면서도 적정한 쌀 재고를 유지하기위해 정부가 그때그때 시가로 쌀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공비축제 제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2011년 정부가 쌀값 안정을 이유로 공공비축미 64만6,000톤을 시가 최저 43%의 가격에 공매로 넘기면서 공공비축제도의 본질을 흐리게 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 쌀값을 떨어뜨리고 수확기 쌀값을 낮게 형성시켜 공공비축 수매가 결정에 그대로 반영되는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다.

이에 당장 수확한 쌀을 팔아 영농비와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농민들은 공공비축미 수매를 거부하게 시작했다. 임종완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회장은 “대북 쌀 지원이 중단되면서 정부가 재고 물량을 처리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당시 보관비만 6,0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며 “공공비축미가 농민들에게 이렇게 적용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설명했다. 임 회장은 이어 “공공비축미의 의미는 퇴색됐다. 그래서 농민들은 수매거부를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격결정 불가, 수탁수매의 함정

쌀 농가들 사이에서 공공비축미 수매 거부 운동이 일자 정부는 2011년 벼 수탁수매를 권장, 2012년 전국 24개소에 수탁 계약재배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된다.

벼 수탁수매란 산지유통업체가 수확기에 사둔 쌀을 보관하고 있다가 때마다 혹은 단경기인 2~3월에 쌀값 시세에 맞춰 판매 후 농가에 정산하는 일종의 ‘후불제 매입제도’다.

언뜻, 단경기 시세에 맞춰 나머지 쌀값을 받으면 농가소득 향상에 일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 지난해 5월 쌀값이 오르는 시기에 정부가 수급조절을 이유로 2009년산 구곡을 시장에 풀면서 쌀값은 수확기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계절진폭이 없어진 것이다.

임종완 쌀전업농 회장은 “수탁수매의 경우 ‘내가 단경기 때 얼마를 받겠다’는 판단이 나와야 벼로 낼지, 도정을 할지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며 “그런데 가격이 오를 때 정부가 손수 구곡을 시장에 풀어버리니 역계절진폭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쌀값을 조종하고 있다. 2년쯤 하니 농민들은 수탁수매를 믿지 못한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표했다.

이같은 피해는 농민과 더불어 지역농협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철원의 한 지역농협은 2011년 쌀값 폭락으로 3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철원지역에서만 4개 농협이 통합권고를 받기도 했다.

철원에서 벼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정부도, 농협중앙회도 쌀값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 아니겠느냐”며 “농민과 지역농협만 피해를 보는 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이같은 농가 반응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5월 벼 수탁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전국 24개소 RPC를 통해 수탁형 계약재배 시범사업 실시했다.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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