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 입력 2013.10.07 08:5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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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농협에 빚을 졌다가 경매로 땅을 날리고 고향을 뜬 경우는 꽤 여럿이었다. 언젠가 정부에서 유리온실 사업을 권장하면서 대규모로 융자를 해줄 때 혹해서 시작을 했던 이들이 대표적이었다.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달다고, 엄청난 초기 투자비용을 낮은 이자로 빌려주자 젊은 농민들이 뛰어들었다. 유기농으로 쌈 채소를 기른다, 어쩐다 했지만 값이 떨어지면 따는 품삯도 나오지 않는 상추 따위를 해서 수지타산이 맞을 리 없었다.

대체 어는 책상머리에서 나온 정책인지 몰라도 평당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시설비를 노린 업자들의 농간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리라는 것도 때맞추어서 잘 갚을 수 있을 때 말이지, 연체라도 하게 되면 곧장 몇 배의 이자로 부풀려지고 도무지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빚이다. 그때 유리온실을 했던 이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망했고 몇몇은 쫓기듯 고향을 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빚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나브로 늘어가는 빚을 어쩔 수 없었다.

작년에 그예 일억이 넘어갔고 준석은 올해 이자만 사백만 원 가까이 나갔다. 그게 결국 경태가 말한 십오억 중에 들어있을 터였다. “형님 말씀대로 이자 수익 이십 억이 다 농민들 주머니에서 나온 건 아닐테지만요, 아니, 그 자식들이 내는 것도 결국 우리 면내의 경제와 연결된 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보세요. 그 중에 다시 예수금 이자, 그러니까 농협에 돈을 맡긴 사람들한테 나간 이자가 딱 절반, 십억이에요. 솔직히 우리 동네만 봐도 농협에 돈 넣어놓고 이자 받아먹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농민들에게서 쥐어짠 이자가 누구한테 가느냔 말예요?”

“글쎄, 그거야 낸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 그래두 마이나스 통장 안 쓰는 집이 벨루 읍으니께 개인적으루 농협에 돈 넣어논 집은 읍을테구, 참, 한 삼백만 원은 우리 동네로 들어와. 마을기금 칠천만 원을 농협에 정기적금으루 해놨으니께.”

“그 돈은 자꾸 불려서 뭐한대요? 어느 동네는 애들 장학금도 주고 그런다더만요. 우리도 잘 상의혀서 어디 쓸 데 쓰는 게 낫지 않어유?” 비스듬히 누워 팔베개를 하고 있던 병균이 몸을 일으키며 한 마디 거들었다.

“나두 생각중이여. 노인네들은 자꾸 돌아덜 가시구 동네 호수도 점점 줄어드니께, 한 번 공론을 붙여봐야지.”

“마이너스 통장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이자가 너무 비싸요. 저도 쓰고 있는데, 연리 8%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무담보라고 하지만 연대보증을 세워놓으면서 너무 높은 금리를 받는 거예요. 형님은 안 쓰시나요?”

“안 쓰긴. 나두 갈두 되기 전에 목까지 차올르는 형편이여.” 준석은 이천만 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었다.

두섭이네와 상호 보증을 선 통장인데 아무 때고 빼서 쓰고, 여유가 생기면 채워 넣으면 되는 방식이라 당장 쓰기는 편하기 그만이었다. 분기별로 몇 십만 원씩 이자로 마이너스가 더해지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면 수시로 대출을 받아야 할 판이라 찍짹 소리도 못하고 쓰는 형편이었다.

“형님, 그게 농민들이 농협에 요구하면 바뀔 수가 있어요. 시중 은행에서 발행하는 마이너스 통장도 그보다 이율이 낮아요. 어떻게 농협에서 농민들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구요. 이건 강력하게 따져서 낮춰야 한다구요. 여기 자세히 나와있지 않은데 대출금 이자 중에 꽤 많은 액수가 마이너스 통장 이자일 거예요.”

 “가만, 그러고 보니까 이게 쬐금은 내려온 거여. 전에는 팔 점 칠오 프론가 그랬어. 언제 총회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구, 그래서 이자를 내린다고 했어. 맞어.”

  “그러니까요. 지금도 팔 프로면 너무 비싸요. 그리고요, 여기 보니까 올해 출자 배당을 5.5%를 한다고 하는데요, 물론 사업해서 번 돈을 배당금으로 돌려주는 건 좋은 일이지요. 그 정도면 적은 게 아니에요. 요즘 시중 금리가 삼 프로대니까, 꽤 높은 수익률이지요. 그런데 그걸 받아가는 사람들을 보자구요.” 경태가 점점 열을 내고 있었다.

여전히 끓고 있는 추어탕의 열기가 더해서인지 불콰해진 얼굴에 땀이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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