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에서 얻어온 가을아욱 한 줌으로 끓이는 힐링

  • 입력 2013.10.07 08:42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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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걸고 몰래 먹는다는 아욱국. 얼마나 맛있으면 밥상을 차려준 조강지처까지도 쫓아내고 먹을까만 아욱국은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몸에도 좋다하여 ‘아욱으로 국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국을 끓여 먹으면 장의 운동을 유연하게 하며 젖을 잘 나게 해주므로 산촌에서 미역을 구하지 못하면 아욱국을 끓여 산모에게 먹이기도 하였다.

 

한방에서는 동규채 혹은 파루초라 부르는데 1907년 7월 대한매일신보에는 아욱을 파루초로 부르게 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아욱은 보양하는 나물이라 한 집에서 봄에 나물을 심는데 그 집 아씨가 좋다며 말하기를 다른 나물은 심지 말고 아욱만 심으라. 우리 서방님이 좋아하시는 나물이다.

종의 대답이 심을 밭이 없다고 하니 아씨 말씀이 저 다락을 헐고 그 터에 심으라 하였다. 하여 아욱의 이름을 파루초라 한다.” 파루초는 깨뜨릴 파(破), 다락 루(樓), 풀 초(草)를 글자로 쓰니 집을 허물고 심을 만큼 맛있고 좋은 풀이라는 뜻일 게다. 허물어 아욱을 심을 다락도 없고, 또 심을 다락이 있다 해도 한껏 게으른 탓에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의지도 없는 나이지만 나에게도 아욱국은 진부하나 흔히들 말하는 치유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병명은 기억할 수 없지만 심하게 앓아누웠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된장으로 간을 한 아욱국죽을 끓여주셨는데 그 뜨거운 국죽을 후후 불어 가면서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져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살면서 지치고 힘이 들 때마다 늘 어머니의 그 아욱국죽을 그리워한다.

목이 꽉 잠기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감기가 와서 끙끙 앓아 누워있을 때도 나는 늘 어머니의 그 아욱국죽이 그립고, 배가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늘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아욱국죽을 떠올리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휴일도 없이 무리하게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목이 잠기고 콧물이 흐르는 감기로 왔다. 늘 나는 이럴 때면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애를 태우면서도 병원은커녕 약 한 알도 제대로 먹지 않고 일상에 매달려 끙끙 앓는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남들 모르게 계속 주문을 외운다.

‘어머니가 된장 듬뿍 풀어 넣고 끓여주시는 아욱국죽 한 그릇만 먹으면 이런 감기쯤 뚝딱하고 떨어질 텐데….’ 하고. 식약동원(食藥東源)이니 약선(藥膳)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음식은, 특히나 아욱국죽은 어느덧 치유의 수단이 되고 있었나보다.

완주에 교육이 있었다. 마치고 나오는데 한 교육생이 아욱이 담긴 비닐봉지를 내밀며 언젠가 어머니의 아욱국죽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와의 우정에 굶주리고 연인과의 사랑에 굶주리고 부모의 보살핌에 굶주리고 진리에 굶주리고 시간에 굶주리는 등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虛氣)는 먹고 또 먹어도 늘 속이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허전함과 허기는 남루한 비닐봉투 속 한 줌 아욱이 주는 감동으로 채워지고 넘칠 것인데 늘 잊고 허둥대며 살던 내가 스스로 안타까웠다.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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