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13회

최용탁 장편소설 '들녘'

  • 입력 2013.06.03 14:53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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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된들 벨 다르겠시유? 글고 야당에서 자꾸 이명박이허구 한 통속이라구 허지만서두 사람들은 그리 생각잖는 거 알잖유? 즈그 엄마 육영수가 청와대 안에서 야당 노릇했드끼 바끄네두 사실 야당이었던 거 아유? 또 지가 헌 말은 꼭 지킨다니께 그도 믿을만 허구…”

듣자 하니 화가 나다말고 웃음이 나왔다.

“육영수가 죽었을 때 초등학교나 다녔을 사람이 그런 줄 어찌 알았대? 한 말을 지킨다니께 믿을만 하다구? 언제버텀 그렇게 정치하는 사람들 말을 곧이곧대루 믿기 시작한 겨?” “당신두 종편 봐봐. 다덜 우리보담은 배운 사람들이 똑같이 얘기허더먼.” 기가 막혀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조목조목 따지려는 판에 전화가 울렸다. 정선택이었다.

“회관으루 내려오지. 동네분덜 죄 모였으니께.” “아니, 오늘 장에 가는 게 아니구 유세에 간담서유? 지한테는 그리 말씀 안 하시더니.” 준석이 볼멘소리를 하자, 정선택은 거리끼는 기색도 없이 “장에 가나 유세에 가나 자네 차 빌리는 거는 같은 거 아닌가? 글고 이건 그냥 선거 유세에 가는 거하고는 다른 것이제. 이렇게 온 동네가 합심혀서 제대루 슨거를 혀보자는, 그러니께 나랏일의 중대사에 힘을 합치자는 거 아닌가? 자네두 직접 가서 이야기두 듣고 허믄 생각이 달리 들 거라구 보네, 나넌.” 하고 꽤나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준석이 듣기엔 도무지 이치에 닿지도 않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전화로 옥신각신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정숙이 두꺼운 잠바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문을 나서고 있었다. 영주가 먹을 밥을 차려놓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두고 난 후였다.

“엄마, 아빠가 쬐끔 늦더래두, 밥 먹구 테레비 보믄서 얌전히 있어야 돼. 엄청 추우니까 절대 밖에 나가지 말구 아픈 발 자꾸 디디지두 말구, 알었지?” 몇 시간 정도는 혼자 집에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영주였다. 서너 살의 지능에서 멈추어버린 영주는 밖으로 나가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쏟아놓곤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어린 애였을 때부터 그런 영주를 잘 알기 때문에 대개 과자나 사탕 따위를 주거나 방으로 들여 몸을 녹이게 한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는 게 스물이 넘은 영주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활동량이 많아 몸은 건강한 편인데 과자나 사탕을 좋아해서 몸무게는 준석보다 훨씬 더 나가는 비만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불안하믄 영주허고 집에 있지, 진짜 굳이 가겄다는 거여? 열성 선거운동원이래두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안 나올 것인데?” “지가 발두 아프구 허니께, 오늘은 얌전히 잘 있을 거유. 영주 좋아하는 햄두 구워놨으니까. 당신은 어제 뉴스두 안 봤어유? 우리 시보담두 작은 데서 유세를 했는데두 사람이 미어터졌다구 허더먼. 춥기루 따지믄 어제가 더 추웠는데두.” 준석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고는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속으로는 시동이라도 걸리지 않아 이 무지한 대열에 불참하고 싶은데, 평소에 속을 썩이던 트럭은 오늘따라 단박에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는 말과는 달리 회관에는 젊은 축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이든 사람들은 거동이 불편한 두 사람을 빼고 전원 집합이었다.

개중에는 남들이 가니 그저 따라가야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정선택의 말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중대한 나랏일에 동참하는 양 제법 얼굴에 열기를 띤 이들도 있었다. 동원된 차량만 네 대였다.

트럭 두 대에 여럿이 탈 수 있는 지프 한 대, 부녀회장의 소형차 등속에 나누어 탄 이들은 최종적으로 열아홉 명이었다. 완전무장을 갖춘 병사들처럼 두꺼운 옷으로 감싼 이들은 비좁은 차안에 바싹 붙어 앉아 시내로 향했다. 목적지는 롯데마트 앞 대로였다. 아예 길을 막고 유세를 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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