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

  • 입력 2012.08.13 09:04
  • 기자명 소설가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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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초에 장맛비라고 한 번 퍼붓더니 소나기 한 줄금 없는 불볕이 연일 내리쬐고 있다. 수십 년만이라는 폭염이 계속되자 아니나 다를까, 과수나무가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33도 이상의 고온이 며칠만 이어지면 과수는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과일을 키우는 대신 씨를 여물게 한다. 후손을, 오직 후손을! 위협을 느낀 나무는 아직 익지도 않은 사과 속의 씨에 전력을 쏟는다. 하여, 구월 중순에야 수확하는 홍로가 칠월 하순부터 붉은 색이 나기 시작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직 반도 자라지 않은 사과가 익어가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과 과수원에 비상이 걸렸다.

조금이라도 과수원 온도를 내려보려고 저녁마다 SS기에 찬 물을 담아 뿌려보지만 온종일 달구어진 대지의 기운을 얼마나 식힐지 마음만 타들어간다. 그런데 사과가 붉은 빛을 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새들이 쪼아대기 시작했다. 보통 까치가 부리를 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는 아니었다. 웬일인지 까치라고는 찾아보려야 없었다. 그런데도 새가 쪼아댄 사과는 늘어만 갔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그런 피해를 당하다보면 정말 부아가 치민다. 해마다 새를 쫓는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애가 타는 터에 새까지 사과를 쪼아대자 가히 분노의 염조차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새가 싫어한다는 목초액을 뿌리고 나프탈렌 덩어리를 과수원 중간중간 매달기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여 전, 주위의 사과 농가 넷이 모인 자리에서 고독성 살충제인 메소밀을 써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는데, 새가 파먹은 사과에 메소밀 원액을 잔뜩 주사해놓으면 다시 쪼아먹은 새가 즉사한다는 것이었다.

메소밀은 고독성이면서도 냄새가 전혀 없는 농약이라 가장 자주 인명사고를 일으키는 농약이다. 무슨 방법이든 써봐야한다는 게 중론이었고 나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마음 한 구석은 좀 불안했다.

새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도 사람이 과수원 주위를 지나다가 사과 한 알이 먹고 싶어진다면, 그가 퍽이나 양심적인 사람이어서 성한 사과 말고 새가 쫀 자국이 있는 사과에 손을 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하리라는 상상이 들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상상이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아버지와 나는 일회용 주사기에 살충제 원액을 넣고 상한 사과에 찔러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과수원을 둘러보던 나는 두 마리의 직박구리 사체를 발견하였다. 비둘기보다 조금 작은, 갈색과 짙은 회색이 섞인 듯한 직박구리는 과수원도 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죽어있었다.

아, 사과를 쪼아 먹은 범인은 직박구리였던 것이다. 사체를 보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무조건 잘못했다는 느낌뿐이었다. 어떡하든 그냥 쫓는 방법을 써야 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 때문만은 아니게 온몸에서 땀이 솟구쳐 흘렀다. 어렸을 적에 남의 공기총에 눈을 대고 새를 겨냥했다가 그 동그란 눈을 보고 놀라 내려놓았던 기억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수십 년이 흐른 후 결국 나는 방아쇠를 당겼구나! 다음 날까지 네 곳의 과수원에서 스물두 마리의 직박구리 사체가 발견되었다. 무려 열네 마리가 발견된 곳의 형님은 이제 거의 다 잡은 것 같다고 희희낙락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잘 모르겠다. 사과를 쪼아 먹은 죄로 직박구리들을 처형할 권리가 내게 있었는지. 인간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농사를 짓는 소박한 인생이라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 먹기 위해 개량을 거듭한 과일을 매다는 기형적인 나무들과 그것에 기대어 사는 나의 삶이 곧 과수원을 하는 나의 불편한 삶인 것이다. 얼마 전 집안에 둥지를 틀었다가 날아간 작은 새 가족을 어여쁘게 바라보던 나와 직박구리를 죽이는 나, 모순덩어리다. 그리고 직박구리들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끝내,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글_최용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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