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 입력 2012.07.02 09:15
  • 기자명 최용탁 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예 유월이 다 가도록 비다운 비 한 번 내리지 않을 모양이다.

내가 사는 곳도 두어 달 동안 소나기만 두 번인가 왔을 뿐 말 그대로 타는 가뭄이다.

올해는 도시에 사는 벗들로부터 여러 차례 가뭄을 걱정하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타들어가는 농작물이 없고 수돗물이 끊길 리 없는 도시에서 가뭄을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전화를 받으며 나는 거꾸로 그들의 삶이 또한 팍팍함을 느끼곤 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비로소 남의 어려움도 보이는 법이니까.

그런데 4대강 본부의 누구는,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 탓에 가물다고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 가뭄이 심각한 건 아니라는 해괴한 소리를 했단다. 과연 그들이 사는 나라와 서민, 농민들이 사는 나라는 같은 곳이 아님이 분명하다.

줄기가 말라가는 마늘을 캐어보니 역시나 씨알이 시원찮다. 씨 마늘 열 접에 마흔 접 소출도 나지 않았다. 농약 줄을 연결해 몇 번 물을 주었지만 가뭄을 이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나보다. 아침저녁으로 계속 주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마늘이야 먹으려고 한 것이고 일 년 생계가 달린 것은 사과와 복숭이여서 날마다 과수원에만 신경을 썼던 것이다.

관정에서 나오는 물로 하루에 열 시간씩 물을 대는데, 아무리 농업용 관정이라도 물이 떨어지면 큰일이 날 판이라 다른 작물에까지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다행히 아직은 관정이 마르지 않아 물을 퍼 올리고 있다. 십 년쯤 전에 거금 육백만 원을 들여 관정을 팠다.

업자는 몇 미터가 되던 물이 솟구칠 때까지 파겠다고 했는데, 싱겁게도 불과 삼십여 미터에서 큰 수맥이 터졌다.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작업을 한나절에 해치우고도 돈은 그대로 다 받는 것이었다. 업자 말로는 복불복이라고 했다. 며칠씩 하게 되면 자신이 손해고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돈을 버는 경우라나 뭐라나.

어쨌든 바가지를 쓴 것 같은 기분에 찜찜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엔 관정에서 나오는 물로 농약을 타거나 더운 날에 밖에서 물을 끼얹는 용도 말고는 쓰지 않았다.

 봄과 여름에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려서 과수원에 물을 풀 일이 없었던 것이다. 거의 날마다 열 시간씩 물을 푸기는 농사짓던 중에 올해가 처음인데 그래도 사과나무는 노랗게 마르는 잎들이 적지 않다. 점적관수라고, 가는 호스에서 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방식인데 아무리 오래 떨어져봐야 하늘에서 내리는 삼십 분 빗줄기만도 못한 듯하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심정으로 가뭄에 맞서는 꼴이다. 게다가 이 가뭄이 더 지속되면, 그러니까 한 달쯤 더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뿐 아니라 모든 생활에 종말적인 상황이 올 것이다. 장마 소식이 들려오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 실은 굉장히 허약하다.

극심한 기상 이변으로 일 년 정도 가뭄이 오면 그대로 사막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우리 마을은 논농사를 위한 저수지가 있고 아직 아주 마르지는 않아서 모내기도 끝냈고 논이 갈라지지도 않는다. 아예 일 년 농사를 망친 곳도 있는데, 감자나 마늘의 씨알이 작다고 불평한다면 농부의 마음이 아니다.

가뭄이 길어지며 옛 고향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우리 마을은 논농사가 많았지만 저수지는 없고 월악산에서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봇도랑으로 끌어와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어찌나 가뭄이 지독했는지 절대 끊길 것 같지 않던 개울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아예 마르지는 않았지만 농사를 짓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 날, 마을의 모든 장정들이 가래를 들고 개울에 모였다. 셋이 한 조가 되어 가래로 개울을 파는 것이었는데, 어른들이 ‘개울을 짜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물길을 깊이 내어 물이 좀 더 많이 흐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수십 명의 어른들이 웃통을 벗고 으샤, 으샤소리 맞추어 가래질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그것은 4대강을 헤집는 포클레인보다 훨씬 장엄하고 위대한 노동이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