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자

  • 입력 2012.06.04 10:10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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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더러 듣는다. 작년 한 해는 거의 만 명이 넘었다고도 한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여전이 이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잘 보도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만 해도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은 많아도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로 들어온 사람은 지난 십오 년 동안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초, 마침내 우리 마을에도 귀농자가 생겼다. 마을에서 가장 많은 논을 소유한 조씨네 집 둘째 아들이었다. 특별히 많은 농지를 소유한 집이 없어서 가장 많다고 해도 오천 평 정도인데, 이 집안의 내력이 조금 특이하다.

그 집안의 양주, 그러니까 조 씨 내외는 예전에 마을에서 다른 집의 고용살이를 했을 정도로 아주 가난했다고 한다. 내외가 결혼했을 때 가진 것이라곤 보리쌀 두 말과 남의 집 행랑에 딸린 단칸방뿐이었다. 그런 애옥살이 끝에 마을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지주가 되었으니 그간의 눈물겨운 노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그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근면과 성실이 이루어낸 작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자식 농사도 실하게 지어 삼남 이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명절이나 휴가철이면 줄줄이 자가용이 제일 많이 들어서는 집이 또한 조씨네였다. 부부는 비록 일자무식의 농투성이였지만 스스로 일군 재산과 장성한 자식은 크나큰 자부심이었다. 자부심이 지나쳐 때로 이웃의 질시를 받기는 했어도 내 생각에 그 분들의 삶은 실로 생존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부모의 전범이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남편은 늦게 배운 술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되들이 소주를 사놓고 아침저녁으로 한 주발씩 거르지 않더니 그예 작년 가을에 세상을 떴다.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였으니까, 그다지 애석한 죽음은 아니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평생 함께 한 반려의 죽음에 크게 상심할 줄 알았던 아주머니는 시간이 갈수록 생기가 돌았다. 남자로서 좀 쓸쓸한 얘기지만, 나는 농촌에 살면서 지아비가 먼저 세상을 뜬 후에 더 활달하고 윤기 있게 사는 지어미들을 여러 차례 보았다.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요, 과부는 은이 서 말이라는 속담이 조금도 틀리지 않음에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다.

하여튼 조씨 아주머니도 끼니때마다 챙겨야 할 지아비가 없게 되자,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일당 오만 원을 받으며 더욱 열심히 남의 일을 다녔고, 겨울이면 내내 마을회관에서 느긋하게 평생 처음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 이른 봄, 마흔 중반의 둘째 아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에게 엄청난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둘째 아들은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꽤 큰 건설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에게는 성공한 자식의 표본 같은 경우였다.

그런데 진즉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되고 몇 년 간 도시에서 실업자 생활을 한 끝에 고향으로 농사를 지으러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로선 복장이 터지고 남들 보기에도 창피한 노릇이었다. 더구나 애들 교육 때문에 가족은 모두 도시에 두고 아들 혼자 내려온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은 우리 마을 귀농 1호답게, 또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답게 마을에서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하우스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자신이 몇 년 간의 농작물 추이를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오이 농사를 지으면 충분히 수지가 맞는 농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그는 어머니 소유의 논에 하우스 세 동을 지었다. 오이는 심은 지 두어 달이면 금세 따는 작물인지라, 이미 수확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이 값이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낮았다. 지난 두어 해 동안 오이 값이 좋아서 심은 농가가 늘어난 탓인지, 개당 이백 원도 채 못 받는다고 한다. 더 딱하기는 그의 어머니다.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고향에 내려온 아들 끼니를 챙기고 평생 처음 하는 하우스 농사를 돕느라 알토란 같이 벌던 남의 일도 못 다니고, 얼굴은 남편이 살아있을 때처럼 다시 울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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