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꽃

  • 입력 2012.05.07 10:15
  • 기자명 소설가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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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은 꼬박 사과나무에 매달렸다. 올해는 봄 날씨가 작년보다는 좋아서 사과 꽃이 며칠 일찍 피었다. 개화 시기가 작년보다 늦을 것이라는 예보와 달리 우리 과수원은 거의 닷새 정도나 빨랐다.

일주일 동안 한 일은 사과 꽃 따기였다. 과수원을 하얗게 뒤덮다시피 핀 꽃은 참 보기에 좋고, 요즘처럼 달이 밝은 때에는 봄밤의 정취를 더하기도 하는데 농사꾼은 그런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나는 아직도 약간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필요 없는 꽃을 일찍 따주어야 좋다는 것은 거의 일반화된 상식이 되어버렸다.

여러 개의 꽃이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느라 들이는 힘을 과일이 될 몇 개의 꽃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꽃따기다. 사실 꽃을 피우고 수정을 하기 위해 나무는 대단한 힘을 쏟는다. 나무뿐 아니라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이 살아가는 무의식의 목적이 그것이니까. 꽃이 지고서야 비로소 무성하게 잎이 올라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꽃이 아니라면 별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자식 때문에 산다, 는 말을 흔히 내뱉는 어떤 종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꽃이 너무 많이 피어 나무에 온통 꽃 사태가 지는 홍로라는 품종이 있다. 사과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품종만큼은 반드시 꽃을 따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일주일을 매달린 것도 바로 요놈들이었다. 꽃은 다 똑같이 생겼어도 어느 꽃이 더 큰 과일로 자랄지는 다 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거짓말 같겠지만 사과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다. 그런 꽃을 ‘정과꽃’이라고 한다.

정체불명의 말이긴 한데 제대로 된 과일이 달릴 꽃이라는 뜻일 게다. 그 꽃만 남기고 나머지 꽃들을 따내는 것이 꽃따기의 요체다. 이 일은 쉽게 품을 사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과밭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 꽃과 저 꽃(그러니까 따낼 꽃과 남길 꽃)을 구분하지 못한다.

만약에 따낼 꽃을 남기고 남길 꽃을 따낸다면, 일 년 농사를 초장부터 망치게 된다. 그러니 힘들어도 식구들끼리 하는 일이 꽃따기다. 신기한 것은, 아내는 요령을 듣자마자 금방 이해를 하고 제대로 꽃을 따더라는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생계가 달려있으니까 그랬을 테지만. 내가 가진 의구심은 남겨진 꽃의 거의 열배나 되는 버려진 꽃들의 대궁 때문이다.

아직 연약하긴 하지만 엄연히 꽃 대궁이고 그것이 잘린다는 것은 나무의 처지에서는 상처를 입는 것이다.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치유를 해야 한다. 더구나 잘린 것은 생식을 위해 피워낸 꽃이므로 상처는 외상뿐 아니라 심리적인 충격일 수도 있다.

충격을 극복하고 상처가 아물기까지 나무가 행할 자가 치료의 속사정을 알 길은 없다. 다만 농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꽃을 따주면 즉시 남은 꽃에만 힘을 쓰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두 배의 힘을 준다고 두 배로 움직이는 것은 기계일 뿐, 나무가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벌에게 쏘였다. 생각 없이 꽃을 따다보면 꽃 속에 앉아있던 벌을 건드리기 마련이다.

침이 달래 있을까. 가만히 있는 자를 건드리는 손끝을 응징하기 위함이다. 며칠간의 가려움을 선사하고 침을 잃은 벌은 바닥에 떨어진다. 싱싱한 벌들은 손이 다가가기 전에 날아간다. 나를 쏜 벌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꽃 속에서 피하지 못한 놈이다. 나는 그 벌이 단지 노쇠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혹여 내가 봄에 친 농약 때문에 날갯짓을 할 힘을 잃어버렸다면, 내 삶은 조금 더 나쁘게 변한 것이리라. 새벽에 빗소리가 들리더니 남은 꽃잎들도 거지반 바닥에 몸을 눕혔다. 비에 젖은 꽃잎들이 하얗게 땅을 덮었다. 햇빛이 나면 낙화는 갈색으로 마르다가 곧 눈송이처럼 스러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전, 저 꽃잎들이 사라지기 전에 술 한 잔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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