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살피는 후보 당선 되길”

총선 맞이하는 농민들의 목소리

  • 입력 2012.04.02 10:00
  • 기자명 김명래, 김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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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요즘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축산 농가의 경우 구제역 때문에 소, 돼지를 파묻은 게 불과 2년 전이다. 정부는 그것을 빌미로 무관세 돼지고기를 수입하고, 한미FTA가 발효도 되기도 전에 무분별한 쇠고기 수입을 했다.

정부가 비틀거리는 축산업계에 강펀치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축산업을 이끌어 가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끝없는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논·밭·과수 농사 등을 짓고 있는 농민들도 FTA 여파에 울상 짓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농업은 세계 시장 개방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국가에서 내놓는 정책들도 농민을 위한 것 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비료값, 농기계값, 기름값 역시 하늘로 치솟고 있어 이 땅에서 농사짓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자동차 팔고 휴대폰 팔아서 정부가 얼마나 많은 경제효과를 얻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정부가 농민을 외면하는 사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분노하고 있다.

농민들은 예전에는 큰 이익이 없더라도 희망을 품고 사는 재미로 일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점점 잃어가고 규모화 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런 농민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정치권에 농민들의 요구가 얼마만큼 잘 전달될 수 있을지는 이번 총선에 달렸다. 우리 농민들 사이에서 ‘살 맛 난다’라는 목소리는 언제쯤 들릴 수 있을지, 총선에 앞서 농민들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들어본다. <김희은·김명래 기자>

 

“농민 대변하는 국회의원 많이 나와야”

김이수(경기 안성시 대덕면·52세)

나에게 농사는 천직이다. 15년간 낙농을 하며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사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미FTA에 이어 이제 한중FTA라는 거대한 물결이 우리 농업을 휩쓴단다. 중국농산물은 우리 농산물 가격의 30% 정도라는데, 우리 농민이 무슨 수로 중국과의 가격경쟁에서 이겨낼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 김이수 씨

 

3백만 농민 중 6천 명도 안 되는 낙농인들이 무슨 힘을 쓸 수 있을까. 구제역 살처분 이후 현재 낙농가 중 97%가 구제역 이전만큼 우유를 생산해 내고 있다. 하지만 5천 톤의 분유가 남아도는 실정이다. 또, 정부에서는 우유 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더니 지원금을 주지 않아 시행도 못 하고 있다.

얼마 전 대전의 한 토론회 자리에서 농식품부 서규용 장관을 만난 적이 있는데 농민들이 끝장토론을 해보자고 요구한 일이 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다던 서 장관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무조건 돈을 지원해 달라는 것보다는 경쟁력 있게 낙농업을 운영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농정현실을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가을에는 초지를 재배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 줘서 노는 땅을 빌릴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한 가구당 3만 평 정도만 심어도 조사료 수입을 줄일 수 있을 텐데. 냇가에 심었더니 하천 무너진다고 못 하게 한다.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줄이는 것만 할 줄 알고 대안 제시는 못 한다. 이번 총선에는 정당에 휘둘리지 않는 후보가 선출됐으면 좋겠고 농민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허황된 대책보다 농민 현실에 맞는 정책 절실”

강창환(충남 아산시 음봉면·56세)

▲ 강창환 씨

 

나는 아산에서 한우 300여 두를 키우고 있는 축산농민이다. 30년 이상 소를 키워서 이제 소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은데,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도통 모르겠다. 정부가 하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감이 안 잡힌다. 소를 키워 자식들 대학공부 시켰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다. 소 한마리 키워서는 대학등록금은커녕 자취방 보증금도 낼 수가 없다.

한해 등록금도 천만 원이 넘어가는데 오히려 소값은 계속 하락해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도 맞출 수가 없다.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소를 키운 게 잘못일까? 이게 우리 농민들 책임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소값이 호황일 때도 있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거리로 나오고, 수입 쇠고기 대신 한우를 찾아 잠시나마 소를 키우는 농가로서 자부심도 생기고,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구제역 파동으로 사람들은 소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작년 쇠고기 값은 개 값도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이 폭락했다. 우리 농장은 집사람과 내가 운영한다. 지금은 입대를 앞둔 아들까지 셋이서 소 여물을 주고, 축사를 청소하는 일을 한다. 우리 가족들은 끼니를 건너뛰더라도 행여 소들이 밥을 거를까 노심초사하며 늘 축사 곁에서 머물고 있다.

요즘은 사료값 때문에 늘 걱정이다. 일년에도 몇십 프로씩 올리는 사료값을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얼마 전 전북 순창에서는 사료값이 없어 소를 굶겨죽는일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자식 같은 소를 죽이는 그 농민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정부의 대책이 더 가관이다. ‘암소를 줄여라. 생산비를 낮춰라.’ 위기 때마다 면피용 대책 말고, 진짜 농민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기업형 양계장 틈새에서 돌파구 필요”

김진길(충남 천안시 성남면·65세)

천안에서 친환경으로 양계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료값은 늘어가고 알 값은 자꾸만 내려간다. 기업화 돼가는 양계농가들 사이에서 소규모 농가들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참 험난하다. 사료비를 아껴보려고 사육기술 특허를 받고, 유기질 비료 특허를 보유하며 질 좋은 달걀을 생산해 내려고 노력하지만 역시나 유통하는 게 어렵다. 양계농가의 가장 어려운 점은 유통 구조문제다.

▲ 김진길 씨

 

소비자와 거리를 좁혀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대상, 중상, 소상으로 이어지는 유통 구조는 너무 복잡하다. 소비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단체와 이야기하고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 봤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소수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또, 요즘 양계농가는 기업화돼가고 있다. 기업형 양계가 늘어날수록 소규모 양계는 잠식되고 경쟁자가 사라질 것이다.

경쟁자 없는 양계장은 높은 가격으로 달걀을 판매하게 될 것이고, 결국 소규모 농가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자가 될까 두렵다. 과거에 1kg 당 350원 하던 사료값은 훌쩍 뛰어 700원이 됐고 농장 운영하기가 힘에 부친다. 없는 농가들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도 기업형 양계에 뒤처진다.

이번 총선에서는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들어주는 의원들이 선출됐으면 좋겠다. 농민을 위한다는 후보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고 해도 얼마나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지 의구심이 든다. 그들도 우리 농민을 깊이 이해해야 농민과 대화하기 쉬울 것이다. 질 좋은 달걀을 생산해 소비자들에 저렴하게 공급하고 싶다.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구제역때 입은 상처 이번에는 수입으로 농민 울려”

장명진(충남 아산시 음봉면·50세)

충남 아산에서 20년이 넘게 양돈을 하고 있다. 농축산 인들이라면 요즘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을 공감할 것이다. 작년과 재작년 구제역 때문에 우리나라 전역이 떠들썩했다. 농촌은 마을 사람들끼리도 왕래하지 않고, 날을 세우며 겨울을 보냈다. 구제역으로 우리나라 돼지의 약 40%를 땅속에 묻었다.

▲ 장명진 씨

 

정부가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아 결국 국민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게 됐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무엇이었나?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이었다. 국내 돼지고기값이 오르니 정부가 항공료 값을 대납하면서까지 수입으로 대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제역으로 무너진 농가들이 다시 농장을 열고 출하를 앞둔 시기가 요즘이다.

최근 정부는 또다시 무관세를 연장해 돼지고기 7만 톤을 수입한다고 한다. 이게 돼지를 키우지 말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선진국들은 이미 100% 자급률을 갖추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의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왜 거꾸로 생산기반을 갖추고 있는 농가들을 없애려고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2년 동안 사료값이 40%나 올랐다. 그래서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 건진다. 농산물도 마찬가지겠지만, 축산물도 농민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시장 경제에 맡겨 가격을 받는 처지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의도적으로 농업을 붕괴하려는 정책 같아 분노가 치민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갖춰서 미국의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지금 농민들은 이미 경쟁력 갖춘 것 같다. 아이들의 ‘방석빼기’ 놀이처럼 정부가 시장을 점점 줄여놓고, 농가들이 서로 경쟁해서 이기라고 하는데 지금 농사짓는 농민들이 그 경쟁해서 이긴 사람들 아닌가?

이번에 국회의원으로 뽑힌 분들은 제발 농업 살리는 정치를 폈으면 좋겠다. 축산물 가격하한제 같은 법을 만들어서 축산농가가 웃으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란다. 가만히 두어도 살기 힘든 농업이다. 굳이 정부가 나서서 힘들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농촌이다.

몇 년 전 350만 농민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숫자가 줄어 300만이 채 안된다고 한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실제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 수가 훨씬 적을 것이다. 외국인이 농사짓는 세상을 바라는 건가? 외국에서 먹거리를 사다 먹는걸 바라는건가? 농민도 함께 웃으며 사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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