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로 보는 상장경매제도와 계약재배

[현장 르뽀]배추 95% 이상 밭에서 거래돼
산지유통인, 위험부담 안고 사들여

  • 입력 2011.06.07 15:53
  • 기자명 최병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산물 공영도매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을 ‘상장경매’라고 일컫는다. 많은 농산물들은 이 같이 공영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있으며, ‘경매’라는 원칙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있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거래되고 있는 배추를 통해 상장경매의 한계와 농민들의 불만을 점검해 본다.

배추는 주로 산지에서 밭떼기로 거래(포전매매)가 된다. 상인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산지유통인들은 농민들과 직접 계약을 맺어 배추 수확작업을 한 뒤 공영도매시장으로 출하하게 된다.

출하에 드는 비용은 모두 상인(산지유통인)들이 부담하게 된다. 상인(산지유통인)들은 인건비, 포장재비, 운송비, 트럭운전기사 운임비 등을 모두 지불한다.
전국농산물산지유통인중앙연합회에 따르면 상인(산지유통인)들이 5톤 트럭 1대(950망)를 작업하는데 드는 비용은 포장재비(그물망) 10만원 남짓, 밭에서 배추를 망에 담는 작업비용 50만원, 운송비(해남에서 서울 가락시장 까지) 60만원으로 총 120만원 정도 소요된다.
이들 상인(산지유통인)들은 출하에서부터 가격이 결정되는 순간까지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을 껴안고 배추 매취사업을 하고 있다. 가격이 높게 형성될 때는 좋겠지만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작업해도 운송비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죽을 맛이라는 것.

해남군 화원면 김성옥 씨는 “화원면에서 봄배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절반가량은 농협과 계약재배를 통해 이미 출하가 끝났지만, 그렇지 않고 상인들과 계약재배 한 농가들은 계약금만 받고 잔금은 받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요즘과 같이 배추가 싼 시절에는 작업을 해봐야 운송비도 나오지 않아 (농가들과 계약재배를 한 상인들이)작업을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가을 및 월동배추를 전문으로 매취하고 있는 강원도의 박병인 씨는 “요즘 거의 (배추수확)작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배추 가격이 워낙 싸서 인건비, 운송비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법률(농안법) 제27조, 제39조에 따르면 산지유통인의 지위는 “개설자에게 등록하고 산지에서 농산물을 수집하여 도매시장 또는 공판장에 전문적으로 출하하고 있는 자”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상인(산지유통인)이 산지에서 도매시장으로 출하할 경우 원가와는 전혀 관계없이 도매시장 법인과 중도매인의 경매과정에서 상품의 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중 상인(산지유통인)들이 취득할 수 있는 이익은 경매가격에서 쓰레기 유발부담금, 상장수수료, 하차비, 수송비를 뺀 금액이다. 경매를 마친 배추는 중도매인들에게 넘어가며, 중도매인들인 이 배추에 마진을 붙여 소매상에게 판매한다. 소매상은 또 여기에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최병근 기자〉

 


 

배추 유통과정에서 발생되는 논란은 없나?
“배추 경매과정 ‘재(이등품)’적용 부당하고 불합리”
유통인들, “시장현실 인정해야 vs‘재’ 적용 농민 사기저하 관행”

배추 유통과정에서 발생되는 논란은 없을까? 엽채류를 중심으로 하는 채소류는 과일과는 다르게 부패속도가 빠르다.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 배추다. 배추는 밭에서 수확하는 즉시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온도가 높아질수록 부패속도가 빨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운송과정에서 짓무름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농민들은 “농산물, 특히 배추의 특성상 짓무름 현상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경매과정에서 ‘재’로 잡아 경락시키는 것은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수익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의 재를 잡을 경우 시장으로 반입된 물량 가운데 20%를 빼고 경매를 실시한 뒤 ‘재’로 잡힌 배추는 이등품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이광형 전국농산물산지유통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재’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산지에서 잘하면 뭐하나. 현재 가락시장에서는 20%의 ‘재’를 잡고 있는데, 이는 산지에서 잘 다듬어서 출하하고자 하는 (출하자들의)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더 높은 가격이 형성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를 적용함으로 인해 낮은 값에 값이 결정되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경제적인 몫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수취가격이 낮아지면 그럼 ‘재’로 인해 이익을 보는 유통 주체는 누구일까? 이 사무총장은 “‘재’로 인해 이익을 보는 유통주체는 중도매인이다”라며 “중도매인들은 이걸 마진이라고 본다. 판매 할 때는 재라고 하지 않고 상품으로 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의견도 있다. 산지에서 작업을 잘 해오지 않기 때문에, ‘재’는 불가피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락시장의 한 관계자는 “‘재’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현재의 배추유통 현실에서 보면 ‘재’를 인정하고 가야하는 것 아니겠냐. 다만 지금 그물망 포장에서 ‘박스’포장으로 전환되면 이 문제의 논란은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매법인들도 배추 재(이등품)에 대해 현실적인 조건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매시장 관계자는 “현재의 조건에서 재(이등품)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피 하다. 아무리 산지에서 작업을 잘 해도 운송과정에서 짓무름 현상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의 시장상황에서 차에 실려 있는 배추를 모두 내려서 경매(하차경매)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보니 배추를 하나하나 모두 검사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재(이등품)는 산지출하자들이 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할 때 과거의 룰을 적용해 20%를 적어 보낸다.
특히 재(이등품)를 마진에 이용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시장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도매인이 가져가는 마진은 얼마 안 된다. 실제 이등품(재)이라는 것을 이익을 낼 수 있는 선이라고 본다”라며 “그러나 1만원짜리 이등품(재)을 1만원에 팔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재(이등품)’ 적용에 대해 불합리하지만 어디에 하소연 할 곳이 없어 그냥 룰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서 농사를 짓고 가락시장으로 배추, 알타리 등을 출하하고 있다는 조영범 씨(38세)는 “농민들 입장에서 ‘재’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에 출하한 농산물을 (운송비 때문에)다시 산지로 내려 보내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룰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재(이등품)’가 중도매인들의 마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침없이 불만을 드러냈다.  〈최병근 기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