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야를 방불케 한 2007~2008년 식량위기

생산비 폭등, 소비심리 위축…

  • 입력 2011.03.07 16:23
  • 기자명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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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년의 식량위기 상황은 전쟁 전야를 방불케 했다. (사)농식품신유통연구원이 정부기관,  학계, 농협, 협회, 산지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08년 농식품 시장 10대 이슈에서는    ‘중국발 인플레이션 바람과 세계 곡물가격 상승(73%)’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세계 곡물 재고율은 2000∼2001년 재고율 30.4%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6∼2007년에 16.2%로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다고 신성식 (주)자연드림 대표이사는 밝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생산비 폭등으로 농사를 지어도 손해만 보는 결과를 낳았으며, 식량위기의 불안감은 라면 사재기와 소비심리 위축 등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황수진 기자〉

▲ 비료·사료값에 유류비도 폭등 = 2006년 10월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밀, 옥수수, 귀리의 선물가격은 2005년 초와 비교해 각각 70%, 55%, 54% 급등했다. 2007년의 경우에도 10월 기준으로 옥수수, 밀, 콩 등의 곡물들이 작년 동월대비 35∼68% 폭등했다. 이러한 국제 곡물가격 폭등은 유류비 증가를 동반하면서 비료값·사료값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비료가격은 2007년 말 24% 인상을 시작으로 2008년 6월에도 63% 인상됐다. 요소비료는 1만2천4백원에서 66.9%가 인상돼 2만7백원으로 값이 올랐다.

사료가격도 지난 2년간 8차례 70% 이상 올랐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실적에 따르면 사료가격은 2007년 말 1포대당 양계 8천1백58원, 양돈 1만5백20원, 낙농 8천5백23원 하던 것이 2008년 7월말 기준으로 각각 1만3천2백39원, 1만4천7백57원, 1만2천82원으로 올랐다. 면세유류 가격은 2007년 6월 대비 최고 104%가 상승했다.

이로 인해 국내 농·축산물의 생산비가 급증해 농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2009년 2월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축산물 생산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8년 송아지 생산비는 2백46만7천원으로 2007년보다 15.2% 증가했다. 한우번식우의 마리당 소득은 전년보다 68만3천원(92.8%) 감소한 5만3천원에 불과했다.
우유 생산비는 전년보다 14.9%했고, 비육돈 생산비는 100㎏당 3만9천원이(21.3%) 증가했다. 육계 생산비도 18.0% 증가했다.

당시 전북 정읍의 한 농민은 “벼농사가 풍년인데, 쌀값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비료, 면세유, 농약 등 농자재 등 생산비가 15%정도 올라 농사지어 밑진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부추겼고 당시 라면, 자장면, 과자 등 서민 물가의 지표로 대변되는 식품들의 가격이 10~20%까지 인상됐다.

▲ 원인은 기후변화, 수요 증가, 투기자본 =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2008년 1월 8일 ‘국제 곡물가격 상승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최근 곡물가격의 상승은 유가상승에 따른 바이오에너지용 수요 증가, 개발도상국의 육류소비 증가, 곡물 주산지의 기상여건 악화 등 수급 요인이 악화된 가운데 국제 해상 운임의 상승, 러시아와 아르헨티나 등 곡물 수출국의 수출세 부과 강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2008년 8월 29일 iCOOP생협연합회가 주최한 ‘식량위기! 한국사회에 대안은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당시 국제곡물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된 기상이변으로 인한 쌀, 옥수수, 밀 등 세계곡물생산량 감소 ▷자유무역·개방화로 인한 제3세계 및 소규모 영세농의 농업기반 파괴 ▷곡물생산을 위한 농지의 지속적 감소 등을 꼽았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식량위기의 원인으로 투기자본을 꼽았다. 지난 윤 교수는 “미국 부시정권의 바이오에너지 정책과 카길, 타이슨 푸드, ADM 등과 같은 초국적 곡물메이저 기업들에 의해 투기의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국제적으로 곡물가격이 폭등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원인으로 “소비수요를 국내외 식품자본의 수입농산물에 의해 선점 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국제곡물가격 폭등에 의한 식량위기의 문제는 단순히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저급한 경쟁력 지상주의와 물질주의, 생명.생태.자연.환경과 같은 지속가능한 가치에 대한 몰이해와 선진 식량수출국들의 비열한 이중성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식량자급률 상향조정 요구 = 한편, 농림수산식품부는 2008년 6월 비료 가격 인상에 따른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상분의 약 30%를 지원할 것을 추경예산에 편성했다. 또 농협중앙회가 30%를 추가 부담하게 하고 비료업체들이 10%를 부담하는 방식을 통해 농가의 부담은 약 20%정도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를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한미FTA저지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농대위)는 농협중앙회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협중앙회 비료값을 올리고 인상차액 일부 지원은 농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비료값 인상에 따른 농민의 추가부담금을 전액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생산비 폭등을 감당할수 없자 농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2008년 7월 한달간 강원 홍천, 충남의 논산, 당진, 서천, 공주 등 11개 시군, 충북 청원, 경남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농자재값·비료값·면세유 지원 등을 요구하는 농민들로 도로에는 트랙터가 몰리고, 관공서 앞에 농산물 포대가 쌓였다. 농민들은 이 투쟁으로 면세유수수료 폐지, 비료값 인상에 따른 보조금 예산 편성 등의 지자체별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또한 식량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제시도 활발했다.
농민연합과 한국진보연대가 2008년 4월 4일 개최한 ‘식량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카길과 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 대항해 식량주권 개념을 살려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으로 모아졌다.
정부에서 내놓은 농식품복합체 등의 규모화된 기업 육성, 쌀라면, 해외식량기지론 등의 대안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편, 김병률 농경연 동향분석 실장은 애그플레이션에 대해 “해외요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국내대책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다. 곡물 생산 증대, 수입 의존적 후진국·개도국에 대한 원조, 곡물 수출규제나 비축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조정 능력이 요청된다”고 주장했다.
윤병선 교수는 유통 거리와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지역먹을거리 체계’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우리 밀 살리기 운동’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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