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 입력 2010.01.11 13:09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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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이라고 하고 싶다. 경인년 백호의 새날에 온 산천이 하얗게 뒤덮였다. 도하신문들은 ‘도시가 하얗게 질렸다’는 선정적 문구로 현대산업사회의 또 다른 모습을 고발하기도 했다.

고마운 하늘의 선물 ‘눈’

그러나 눈이 내린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하늘의 선물인가. 천둥벌거숭이들은 손을 불어가며 눈을 굴리고 눈싸움을 즐길 것이며, 농부들은 올해 풍년을 예감하며 하늘에 경배할 것이다. 그래서 서설이다. 만물이 살아가는 중요한 것 중에 물 만한 것이 없다.

바짝 메마른 봄날 한 포기의 모를 내지 못하여 굶주렸던 우리민족이고 보면, 눈이 펄펄 내리는 것 자체가 논에 물을 가둘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봄에 모를 낼 때 긴요하게 쓰인다. 그래서 눈 오는 날은 축제의 날이요, 눈은 풍요를 상징한다.

시장중심의 사회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대량 이동과 물류의 빠른 유통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교통수단의 발달과 통신의 발달을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자본이 한곳에 머물러 자본의 증식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증권시장에 출근하는 사람이 몇 시간씩 눈에 갇혀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들로서는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농산물의 이동제한은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미 신문들은 농산물가격 폭등으로 바구니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상추나 시금치 등 신선농산물 값은 40∼120%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처럼 예전에 경배의 대상이었으며 낭만적이었던 눈이 속도전의 자본사회에서는 그저 눈폭탄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아아!! 세상인심의 모진 변화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선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하는 것인지에 사회가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인간의 가치부터 물질로 판단하는 속물이 되어 버렸다. 한때 장안의 인기를 모았던 여배우의 ‘부자되시라’는 덕담까지도 온통 돈으로 포장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난한 여유와 행복 되찾자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백석은 이 시를 통해 스스로 등돌린 세상에 대해 남루하면서도 남루하지 않는 여유를 비애로 노래했다고 한다.

너무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난한 여유와 행복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다. 새해 첫날 하얗게 세상을 덮은 서설과 함께 ‘사람 나고 돈 났다’란 말을 곰곰이 성찰했으면 좋겠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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