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소비자조직 확대 뒷받침해야

  • 입력 2010.01.04 13:00
  • 기자명 윤병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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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선 건국대 교수
현재의 농업과 먹거리는 ‘종자에서 식탁까지’이르는 거의 전 과정에 걸쳐 거대 초국적 농식품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농업과 농촌이 피폐의 길을 걷고, 식탁에 ‘질 나쁜 먹거리’가 범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농업-먹거리체계를 통틀어 지칭할 때 ‘세계농식품체계’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갖는 농업-먹거리체계를 ‘지역농식품체계’라고 할 수 있다.

지역농식품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가능하다. 토종종자의 복원을 통하여 초국적 종자기업이 생산하는 종자에 대신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으며, 지역단위의 자족경제 혹은 자기의존경제를 확립해 내는 것도 그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역농식품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 중에서 지역먹거리운동은 현재의 강고한 세계농식품체계의 또 다른 희생자인 소비자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지역먹거리운동은 생산자측과 소비자측이 서로를 생각하고, 농(農)과 식(食)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축소하면서 거대 초국적 농식품자본에 의해서 훼손된 ‘농’과 ‘식’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운동이기 때문에 지역농식품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식량주권 사수와 여성농민의 권익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이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먹거리 사업단(우리텃밭)’을 발족시킨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농민이 직접 재배한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가공·유통하는 이 사업은 도시의 소비자를 고정회원으로 확보하여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직거래를 통하여 취약계층 여성농업인에게는 생산비를 보장하며, 도시의 여성단체회원들에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여농의 우리텃밭 사업을 통해서 유통되는 물량이 미약하다고 해서 이 사업이 가지고 있는 의의와 파급력까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례로 작년 8월초 ‘우리텃밭’사업이 TV를 통해서 소개되자, 접속폭주로 인터넷까페가 다운되었던 적이 있다.

이 자그마한 사건은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농민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소비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대형마트의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손쉽게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일주에 한 번씩 산지의 여성농민들이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제철채소를 보내주는대로 받아서 먹는 행복을 택한 것은 식탁의 안전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농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텃밭사업은 우리 농업이 지향해야 할 바를 앞서 실천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대규모 단작화을 지향하는 산업형 농업이 지배하다보니 농민들마저 지역곳곳에 침투해 있는 대형마트의 먹거리 고객이 되어버린 역설적인 현실에 대한 여성농민들의 자각과 각성이 텃밭사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도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농촌의 공동체가 거의 파괴된 상황에서 텃밭사업을 계기로 생산농민들간의 소통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만큼이나 의미를 갖는다.

우리텃밭사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조직의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주체의 확보나 가공농산물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텃밭사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 왜 텃밭사업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항상 공유하고 풀어내는 작업은 언제나 중요하다. 이런 고민이 깊어질수록 텃밭사업을 펼칠 수 있는 영역과 관계가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텃밭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래된 새로운 ‘보물찾기’를 전여농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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