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구례고등학교에 입학한다

  • 입력 2009.12.21 14:26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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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표현하는 것이 마음을 다 보여줄 수 없을 때 답답하다. 오늘 그렇다. 한빛인 방과 사진자료실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며 그냥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세상에 이런 학교…. 있었구나…. 그래서 사람은 희망이구나.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
〈… 중략 …〉
그냥 영산강을 걷는다던, 그리고 다녀와서 새끼발가락이 아프다며 전화한 우리 보란이, 그렇게 대견한 걸음을 하였구나. 한빛에서 더 성숙한 사람이 되거라. 엄마와 아빠가 해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대신 해주는 한빛고. 선생님들 한 분, 한 분 일일이 다 알지 못해도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하게 인터넷의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나도 놀란 글.

대운하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지금의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작년 2월부터 생명의 강을 모시는 각계의 사람들이 ‘운하에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생명평화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남쪽 반도의 강을 따라 100여일을 순례했던 역사(!)가 있다. 순례단이 영산강을 따라 걷던 작년 4월 어느 날, 150여명의 담양 한빛고 학생들이 그 길을 함께 걸었고 도중에 영산강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 왔었다.

지난 12월16일에 둘째인 아들이 고입 선발고사를 치렀다. 아들이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적잖은 시간을 고민해야했다. 성적이나 포부가 웬만한 아이여서 누나가 다니는 한빛고등학교가 아니면 순천이나 타 지역의 이름난 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아들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그토록 감동을 줬던 한빛고도 선택하지 않았고 명문이라는 학교도, 순천도 아닌 구례에 남게 했다. 선발고사 하루 전날인 예비소집일. ‘공부 좀 한다’하는 친구들은 모두 순천으로 구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아들. 연합고사가 끝난 지금까지도 부모의 선택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고민하게 되는 현실.

하지만 결정하는 순간 이미 생각은 정리를 했었다. 큰 아이인 딸이 다니는 한빛고에서 내가 받았던 감동은 무엇이었던가? 전교조 선생님들과 뜻 있는 선생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학교 살리기의 사례들을 들으며 내가 했던 결심과 요구. 농산어촌교육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상급식조례제정을 위해 공을 들인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내가 사는 지역의 학교에서 만들어가자. 좋은 학교. 다닐만한 학교. 보내고 싶은 학교.
구례중학교에서 빠져나간 아이들과 구례의 아이들처럼 타 지역으로 유학을 하여 죽자 살자 공부해서 만들어주는 똑같은 군단위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 대학진학의 결과에 의해 줄 세워진 농촌 지역의 명문고(?)에 몰려드는 타 지역의 아이들로 인해 정작 내가 사는 동네에 고등학교가 있음에도 버스를 타고 먼 거리의 학교를 찾아야하는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아이들, 그것도 교통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의 아이들이 위화감과 함께 겪을 수밖에 없는 이중삼중의 안타까운 현실은 농촌 지역의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문제로부터 출발한 나의 어설픈 선택과 결의는 그래서 대단하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참 좋은 세상을 나로부터, 내 현장에서 실천하고, 변화시켜내는 일들을 아들을 위해 시작한다. 구례 살리기를 위해 시작한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다.

나는 아들과 함께 구례고등학교에 입학할 것이다. 어느 학부모가 쓴 감동의 글이 구례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날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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