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술집에서 나를 들여다보다

  • 입력 2009.12.07 11:28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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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친구야, 참 반갑다. 그래, 우예 살었노? 집에 어른은 잘 계시고.”

12월 2일. 영천 장날이었다. 나는 혹시나 촌 할마시들이 가지고 나올지도 모를 돼지감자나 좀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장터를 배회하고 있었다. 도시에 사는 선배가 당뇨가 생겼다며 재배하지 않은 자연산 돼지감자를 좀 구할 수 있느냐고 전화를 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마늘 전을 돌아 고추전을 빠져나오는데 누가 어깨를 쳤고 돌아보니 두메에서 농사를 짓는 중학교 동기였다. 손등이 거북등 같은 그는 다짜고짜 술집으로 나를 이끌었고 그렇게 오전부터 술추렴은 시작되었다. 마흔아홉 살의 젊은 아버지가 내게 처음으로 술잔을 권했던 그 영천 장터거리. 삶의 경전 같은 장꾼들 악다구니 속에서.

자리에 앉자말자 올해 농사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내 물음에 친구는 해맑게 웃기만 할 뿐, 농사짓는 일의 고단함에는 애써 입을 다문다. 다섯 남매를 키운 그의 농사는 듣지 않아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빗물에 망한 복숭아농사와 고추농사, 애물단지가 되어 창고에 처박혀 있을 사과농사가 그의 얼굴에 또 몇 개의 골 깊은 주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 좀 적게 해라. 인자는 애들도 공부는 다 마쳤을 거 아이가?”
“공부만 끝내면 되나? 큰 가시나가 설 전에는 시집을 간다카이 인자부터가 걱정이다.”

친구는 가뿐하게 소주잔을 뒤집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김치조각으로 입을 가신다. 김치를 씹는 입으로 농협에 갖다 줄 돈을 장만하기 위해 오늘 장에 고추를 전부 내다 팔았다고 한다. 집사람이 미장원에서 파마를 할 동안 심심했을 텐데 마침 잘 되었다고 연신 신둥신둥 웃는다. 그러면서 반갑다고 친구는 자리에 앉아서도 내 손을 놓지 않고 살갑다.

“자네는 얼굴이 하나도 안 늙는다. 그게 다 돈에 안 짜들리이 그렇제? 내사 마 부럽다.”

나는 친구의 ‘자네’라는 말이 어색해지고 ‘너’라고 지칭하는 내 말이 부담스러워 어깨를 비비꼰다. 이런 내 생각은 인간관계를 신중하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친구 사이라면 너나들이로 막말을 하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로 사실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에 비에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이라는 고마운 생각보다 ‘농사일을 별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까봐 가슴이 뜨끔해지곤 한다. 사실 겨울 몇 달만 빼고 내 얼굴은 언제나 검게 그을려 있는데 말이다.

뚝배기가 더운 김을 마구 말아 올리는 안주가 나왔다. 옻닭이다. 그것도 오골계. 친구는 들어서면서 굳이 자기가 계산을 할 것이라며 옻닭을 먹느냐고 물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기롭게 오골계를 시켰다. 나는 친구의 끝없는 애정을 한 몸으로는 다 받아내지 못해 촌닭처럼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올 농사는 돈 좀 만졌나? 자네 복상농사 잘 짓는다는 소리 골짝에서도 듣고 있다마는.”

소문난 잔칫집 같았던 복숭아농사를 생각하며 나는 또 황공해진다. ‘진짜 농사꾼’인 이 친구에게도 헛소문은 갔던 모양이다. 나는 친구 얼굴을 바라보기가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옻닭 국물만 퍼먹는다. 혀끝에 와 닿는 옻닭 국물이 왠지 거칠다.

“자네도 어젯밤에는 어지간히 퍼마신 모양이구나. 속 좀 풀어라.”
그 말에 속이 뜨끔해서 얼굴을 들자 친구가 술잔을 코앞으로 들이민다. 이 친구는 술을 마실 때마다 잔을 부딪쳐야 술맛이 난다고 믿는 모양이다. 단 한번도 어김이 없다. 쨍, 하고 부딪친 잔을 목구멍으로 뒤집는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져 시선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오랫동안 저 친구에게 끊임없는 애정과 신뢰를 입어왔다. 보잘 것 없는 내 시집 한 권 받은 것에 감격을 하고, 어쩌다가 먼발치에서 바라본 농민대회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악다구니를 써는 내 몇 마디에 감동했다며 친구가 자랑스럽다고 하던, 참 순진무구한 이 사내 앞에서 나는 갑자기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위선과 오만과 허장성세로 가득 찬 나란 존재. 나는 단 한번도 그를 만나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반가워서 손바닥에 힘을 주지 않았고, 건네는 말 한 마디조차 말라빠진 북어대가리처럼 무미건조했었다. 그것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거푸 몇 잔 소주를 털어 넣었다. 소주와 뒤섞인 옻닭 국물이 위벽이 아니라 내 양심을 마구 긁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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