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보장과 여성농민 삭발

  • 입력 2009.11.02 11:36
  • 기자명 박점옥 경남 창녕군 영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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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머리 굴리지 않고 일신의 안일을 바라지 않으며 농사짓는 고단함을 기꺼이 감당하고 사는 농민들에게 이 가을은 너무도 힘겹다. 바로 쌀값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봄부터 그렇게 아글타글 농사를 지어왔는데 수확하기 전부터 나락가격이 11만원에서 12만원대로 형성이 되면서 농민들의 가슴을 쥐어짠다.

아직도 쌀은 농민소득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나마 쌀값은 다른 농사에 비해 돈이 되는 편이었기 때문에 쌀이 가지는 상징성이 아니고라도 굳이 포기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온 것이다.

때문에 가을 농사로 돈을 만질 계획을 하고 있는 농민들에는 지금의 상황은 거의 절망이다. 도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외식을 제대로 해보길 하나, 단풍구경 간다고 새 옷을 사 입기를 하나, 뼈 빠지게 농사지어서 근근이 아이들 공부시키노라면 끝이다.

나락농사가 기계화가 많이 되어 손 안대고 농사짓는 양, 노동이 얼마 안 들어가는 줄 알지만, 실은 나락농사도 손 갈 만큼 간다. 콤바인에서 건조기까지 풀 세트로 기계를 갖추고 사는 집은 빚 걱정이 태산이고, 아직도 햇빛좋은 날 아스팔트 위에서 낑낑대며 건조시키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여전히 힘들게 수확기를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비라도 내릴까봐 애간장을 태우는데 수확기에 쌀값이 이렇게 형편없이 형성되니까 농민들의 애간장은 녹아내린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배경으로 지난 10월 20일 전국여성농민대표자 대회에서 쌀값보장과 대북지원 법제화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내가 머리를 깎는다고 쌀값이 보장될까 하는 마음에 결심이 서질 않아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머리를 한두 번 깎았는가! 농민들이 데모를 좀 작게 했는가! 각종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속도로 점거, 30만 농민시위, 고공농성, 노숙농성, 단식 등 헤아릴 수도 없다.

농민들의 권익과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들의 진심은 정작 방망이를 두드리는 정치인들에게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답답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쌀값은 정치의 결과이고 힘의 논리이기에 누군가는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뭉치느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그것만이 농민의 권리를 보장받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국민들의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래되었다 해서, 여러 가지를 해봤다고 해서 가만있을 수 없지 않는가.

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질기게 싸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여기까지 하고서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깎았다. 기왕 여기까지 나섰으니 올 가을에는 반드시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고자 한다. 더 많은 농민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새로운 결의를 할 것이다.

수확과 투쟁이 한창인 철에 또 희망의 씨앗을 키운다. 내년 봄에 수확할 양파의 모종을 부었는데 기온차가 심해서 인지 제대로 크기는커녕 병충해가 기승을 부려 모종이 자꾸 말라 죽는다.

잘 키워서 본밭에 옮겨 심어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이다. 농사는 희망으로 씨앗을 넣고 걱정으로 짓지만 현실은 절망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짧은 머리를 매만지며 결의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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