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는 준비되어 있는가?

  • 입력 2009.10.27 14:04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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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멀리에서 찾아온 한 시인과 낮부터 새벽까지 오래 통음(痛飮)에 젖은 적이 있었다. 술기가 제법 거나해지자 그는 내게 시의 방향을 틀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이젠 제발 농업/농사/농민에 대한 격문은 그만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농업이 아닌 가슴 속에 쌓인 그 무엇을 끄집어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만큼 농민회에 복무했으면 당신 문학에도 그만큼은 복무해야 되지 않느냐고 흰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 나는 술잔으로 시인의 입을 막아버리고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문학의 본령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는 껄끄러웠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피를 토하는 소쩍새처럼 외칠 수밖에 없었는데 ‘미친 보수’ 이명박 정권에서 격문을 버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것이다. 막가파식으로 국토를 허물어내고 용산참사를 일으키며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붕괴시킨 이 정부가 경영하는 나라는 더 이상 문화국가가 아니고 야만국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부 요직에 앉은 인간들이 일찌감치 자명고를 찢어버렸으니 도대체 이 권력은 어디에서 퇴로를 준비할 것인지 참으로 걱정이 앞선다.

이 정부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광란의 질주를 한다. 10.28 재보선을 앞두고 꾸역꾸역 토해놓는 한나라당 공약이 참 가관이다. 그야말로 ‘삽질’ 뿐이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노가다 십장’ 출신 식구답게 그쪽으로만 사기를 치고 있다. 신(新)안산선 개설에 5조 원, 수원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국책사업 2조 원과 지하철 4호선 연장에 2조 원 이상을, 충북에선 ‘동서 5축도로’ 건설에 3조 원, 강릉에서는 경전철 복선화 사업에 3조 3천억 원, 경남 양산에서는 부산지하철 연장과 울산까지의 경전철 사업에 또 수 조 원을 퍼붓겠다고 한다. 부도수표가 확실한 그야말로 ‘이명박표 공약’, ‘노가다 공약’ 뿐이다. 누구 주머니에서 그 많은 돈을 갈취해낼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 정권은 완전 코미디 정권이야. 용산참사까지만 해도 화가 치밀었는데 이제는 웃음이 터져. 배꼽이 빠지도록 웃겨. 나, 이 정권에 완전 중독이 돼버렸어. 내가 미쳤니?”

새벽쯤에 꼭지가 돌아버린 시인이 뱉은 말은 역으로 이 정부의 정곡을 찔러버린 말이다. 이 정부가 하는 짓들은 하나같이 웃음만 필필 기어나오 게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도 많이 분노를 해서 식상해지니까 이제는 웃음을 토해내고 있단다. 가증스럽다는 것일 터. 그래서 막말로 너 꼴리는 대로 해봐라, 하면서 멀찌감치 물러앉아 관전자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방관자들 때문에 이 정권이 더 사악해진다는 사실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기억의 낱장을 한번 샅샅이 훑어보라. 정곡을 찔리고도 얼굴 한번 붉히지 않았던 이 정권의 뻔뻔함이라니!

문제의 본질은 다를지는 몰라도 최근에 더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아니 이건 좀 슬픈 일이다. 어느 날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에서 타전한 메일에는 ‘홍명희문학제를 함께 지켜주십시오’ 라고 호소를 하고 있었다. 용산참사가 아니고 4대강이 아니라 홍명희문학제를 지켜달라니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싶어 읽어보다가 나는 비실비실 웃고 말았다. 참 졸렬하다. 이렇게 많이 반체제인사들만을 양산해서 어쩌자는 말인가. 퇴로는 준비되어 있는가?

평생에 소설『임꺽정』한 편으로 한국문학의 거봉이 되어 우뚝 솟은 벽초 홍명희! 그이의 고향인 충북 괴산군의회가 보훈단체의 반발과 기관의 압력으로 14년 동안이나 진행해오던 ‘홍명희문학제’ 예산 3천만 원을 전액 삭감해버렸다고 한다. 참 질 나쁜 인간들이다.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희망과 연대’ 창립총회장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수구보수꼴통 ‘늙은 꼰대’들의 독기어린 눈빛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10년’일 터이지만 나라의 민주주의는 20년 저쪽으로 후퇴해버렸다.

괴산군 제월대 아래 세워진 그의 시비에 새긴 그대로『임꺽정』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情調)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번 빌려 입지 않고 순 조선 것으로만 만들”어진 한국문학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거기에까지 꼼수를 부리다니 졸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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