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살만하니 나가라니…”

4대강 사업 추진 팔당유역 농민들의 기막힌 사연

  • 입력 2009.10.19 11:05
  • 기자명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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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가꿔온 유기농지 사라질 판
대체농지 거론 땅도 척박한 야산
2대걸쳐 강제수용 당하는 농민도

▲김태원 씨가 채소밭을 손보고 있다. 김 씨는 오랜세월 옥토로 가꿔온 유기농지 대부분을 4대강 사업으로 잃게 된다. <사진-김주영 기자>
정부가 강행하는 4대강살리기 사업이 한강이 본류인 남한강 일대 수변지역 농지를 수용하게 되면서 팔당유역서 수십년간 유기농을 일궈온 농민들이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오는 11월 팔당유역 4대강 사업 착공시기가 되면 약 100가구가 농사짓는 49만5천㎡ 유기농지는 수장될 예정이다.

주민들은 당장 착공이 시작되면 목숨 걸고 싸우겠다며 지역의 공동대책위를 꾸린 상황이나, 이들의 대응은 정부의 사업 강행 의지로 묵살되고 있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팔당에서 농사를 25년간 지었다는 김태원 남양주 대책위원장은 이 지역에서 3천평 유기농사를 짓는다. 그 가운데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극히 일부의 농토를 제외하고 모두 수용된다며 절박함을 호소했다.

김태원 위원장은 무엇보다 정부가 대규모 사업 추진을 앞두고 이해관계 당사자들인 농민들에게 사전 통보나 설명 없이 추진한다는 것에 분노했다. 김 위원장은 “마스터 플랜이 발표되기 전 어떠한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고, 형식적인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설명회와 공청회가 있었을 뿐 주민들에 대한 동의절차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당장 11월에 이 일대 착공을 들어간다고 하는데 공사가 시작되면 우리는 장비 앞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 남양주 조안면 일대 유기농지는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은 수변지역을 중심으로 유기농지가 형성 돼 있다. <사진제공-팔당공대위>
▲ 팔당유역 유기농가에는 도시접근성과 주변경관이 좋아 도심 친환경농산물 수확체험단이 자주 찾는다. <사진-김주영 기자>
이 일대 주민들은 그동안 일궈온 유기농지에서 내몰리면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대체농지로 거론하는 땅은 인근의 척박한 야산이기 때문. 그러나 친환경유기농산물 인증의 경우 토지에서 화학성분을 제거하고 무농약 인증 단계를 거쳐 최소한 5년 이상이 걸린다.

또한 팔당지역은 그 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 개최지로 확정된 상태이다. 이 지역 농민들은 무엇보다 그 동안 노력 끝에 만들어놓은 비옥한 토지를 수장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개탄했다. 김 위원장은 유기농을 처음 시작할 당시 토마토에 붙은 진딧물을 떼기 위해 꽹과리를 치는가 하면 담배찌꺼기를 모아 밤에 태워 해충을 없애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고 전했다.

이 지역 유기농가의 경우 최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변화로 소득이 안정되어 가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남양주와 양평의 경우 100농가정도가 유기농사를 짓고 있고 연 매출이 60억으로 총 100만 톤의 농산물을 수도권 소비자 60만명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팔당유역 주민들은 지난 1966년부터 시작돼 1973년 준공된 팔당댐 공사로 이미 한 번 농토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지역 농민들은 정부로부터 다시 강제수용을 당하게 된 것.

팔당댐 준공당시 마을의 이장이었다는 이강용(송촌리, 77) 씨는 “당시 팔당댐 착공으로 농민들은 농토에서 내몰렸고 생계가 막막한 농민들은 4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정부로부터 하천부지에 영농이 가능하다는 점용허가권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매년 일정의 사용료를 내왔으며 15년전 이 일대가 팔당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자력으로 유기농업을 일궈온 것이다.

▲이강용 씨 일가는 2대째 정부로부터 농지를 강제수용 당하게 된다. <사진-김주영 기자>
이 지역에서 가업을 이어 유기농사를 지어온 이강용 씨 아들 이광재(송촌리, 46)씨도 총 4천평의 유기농사를 짓고 있다. 이 씨의 경우 사업이 강행되면 4천평의 토지 모두 수용된다. 그는 “아버지 대에는 팔당댐 준설로 강제수용을 당했고, 자식인 나는 4대강 사업으로 강제수용 된다. 내 자식들 대에는 생활터전인 집에서 내몰리지 않으란 법 있느냐”고 말했다.

최근 지자체에서는 이 일대 보상문제와 관련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형식적인 선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씨는 “지자체에서는 세계유기농대회 문제도 있고 이 지역 유기농가를 2011년까지 점용허가를 유예하려는 것 같다”면서도 “청와대와 국토해양부가 밀어붙이면 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보다 이곳의 땅이라며 그 동안 20년간 자력으로 일궜고 최근 수년간은 정부도 유기농민들의 노력을 인정해 이 지역 귀농을 권장하는가 하면 저리대출 등의 지원도 받아왔다고 전했다.

이광재 씨의 모친 정정숙(73) 씨는 “이제야 겨우 빚도 갚고 살만하니 나가라 한다”며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서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 나서서 하시니 어쩌겠느냐”고 말을 흐렸다. 한편, 4대강살리기 사업의 한강1공구로 들어가는 팔당유역은 오는 10월 말 국정감사 기간이 끝나면 11월부터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간다.   〈남양주=김주영 기자〉

▲ 팔당유역에서 생산한 친환경유기농작물은 영농조합 팔당생명살림을 통해 연 100톤 60만 도심 소비자들에게 공급된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 영농조합은 겨울에는 약 90%가량의 농산물 유통에 차질을 빚게 된다. <사진-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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