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대란으로만 끝날까?

  • 입력 2009.10.12 11:51
  • 기자명 이재현 전북완주시 이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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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들녘의 트랙터는 밤중까지 쉰 소리를 내며 논바닥을 돌고 또 돌고, 백에 담긴 나락들은 헐떡이는 트럭에 실린 채 알피씨(RPC, 미곡종합처리장)로 향한다. 추석을 고비로 날씨도 일손도 기계도 달리기에 바쁘기만 하다.

지난 달 29일이었다. 전북도청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여러 입장과 처지로 겁나게 모였다. 그 중에 단연 눈에 띄는 일등은, 제일 먼저 와서 제일 늦게 가는, 아직 남성(男性)의 각진 턱을 갖추기에도 모자란 우리 아들녀석 같은 애띤 전경들이다.

다음으로 시선을 끄는 사람들은 미색의 민방위복 같은 옷을 입고 긴장감을 온통 뒤집어쓴 채 무엇 때문에 바쁜지 알 수는 없지만 저마다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도청 직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크게 느껴지지 않는 농민들이 둘 셋, 서넛, 이삼십 명, 사오십 명, 갑자기 우루루 떼로 모여들어 마침내 천 명에 가까운 무리가 운집했다. 농민식으로 모였고 농민식으로 했다. 농민식은 농민식일 뿐이다.

쌀값 대란해결과 전북도 농정개혁을 촉구하는 9.29 전북농민대회’

농민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대북 쌀지원과 지차제의 직불금 인상, 지난 해 도의회에서 통과된 밭직불제 시행이었다.

답변은, 쌀 누적량 해소 장기대책, 직불금 10월말 농민단체와 협의, 밭직불제시행 현실성 검토 용역이라고 했고, 그나마 도청 1층 오은미 의원 단식농성장에 김완주 지사가 찾아와 오 의원의 혼내킴에도 한참을 있다 갔다.

그 전에, 9월 10일 충남·전남·전북 농민대회와 14일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기자회견이 있었고, 22일 전북농민단체연합 기자회견, 도여농 간부들의 삭발과 혈서가 있었다.

또 24일 전북진보연대 기자회견, 25일 급기야 오은미 의원이 단식 17일째 탈진해 병원에 실려 갔다 다시 오고, 29일 대회 날 농민단체 대표자들이 김완주 도지사를 만났던 거다. 성에 안차고 뭐라 할 말도 없다.

여성농민이 머리를 깎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잘린 머리카락을 받을 도지사도 끔찍했으리라. 혈서라고 손가락에 피를 내서 쓴 천을 기어코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대북 쌀지원과 지자체 직불금 인상, 도의회 통과된 밭직불제 조례시행을 왜 해야 되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지 않은가.

나는 그저 그 날 모인 농민들의 심정을 전하고 싶다.

그 날은 추석을 코앞에 두고 농민대회를 힘겹게 조직해낸, 뭔가 표현하기 힘든 농사꾼들의 시커먼 얼굴, 그리고 울분에 가득찬 뒷꼭지들이 아직도 그림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지금 동네 방앗간 쌀금이 13만원 이짝저짝이다. 나락 다 거두는 11월이면, 아니 혹시 그 전에 또 들고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란이란 큰 난리가 난다는 건데, 그냥, 쌀값난리만으로 그쳤으면 좋겠다. 반 이명박을 넘어 혹 대정부투쟁으로 갈지 누가 알겠는가. 정말 농민 식으로 더 이상 안 해도 되면 진짜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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