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농지투자는 ‘신식민주의’

  • 입력 2009.08.29 11:22
  • 기자명 홍형석 전농 대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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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해외농지개발은 국내 소비를 위한 옥수수와 콩, 그리고 야자유 등에 집중되어 있다. 모두 국내 자급률이 10%를 넘지 않는 품목들이며, 또한 세계 3∼5위의 해당 작물 수입국이기도 하다. 모 항공사의 광고 속에 등장하는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을 장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은 환경파괴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사막으로 인하여 인근의 물은 모두 농장에서 빨아들이게 되고 주민들은 먹을 물을 구하기 위해 수km 떨어진 곳으로 다녀야 한다.

열대우림 파괴로 식량위기 극복?

또한 단작화, 연작화, 대규모형태로 이루어지는 현지농업개발은 화학비료, 농약 등의 대량살포를 필요로 한다. 단작화로 인한 지력의 저하, 표토의 유실은 토양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또한 대량 살포된 농약은 주변생태계를 완벽하게 파괴할 것이며, 수만, 수십만 ha에 달하는 지역이 옥수수 외에는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릴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농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이다. 기존의 농지들의 경우 현지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정부의 강요로 땅을 빼앗기고 있으며, 다른 경우는 열대우림과 같은 천연의 자연지역들이 농지로 바뀌고 있는 문제이다.

지구온난화의 주요원인인 열대우림의 파괴를 통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식량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모순적이다.

많은 국제NGO들이 가장 우려하는 바는 바로 지금의 해외농지개발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지면서 가져오는 신식민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유엔 산하의 국제식량농업기구의 특별조사관인 올리버 드 셔터는 지금의 ‘농지확보’문제가 심각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국, 일본, 한국과 중동국가들이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 대한 농지확보는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규모 또한 엄청나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아프리카에 거대한 농지를 확보하여 중국의 농민 1백만명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해외농지개발정책은 한국정부가 열심히 따라하고 있을 정도로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동국가들은 식량안보의 사활적인 문제를 내세워 오일펀드를 쏟아 붇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기업들에 의한 농지투자는 있어왔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그러하고 아프리카의 커피, 카카오, 면화 농업에 대한 초국적 기업들의 투자로 인한 아동착취와 농업노동자들의 피폐한 삶 등은 국제사회에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위기와 식량위기가 결합하면서 농지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으며 초국적 기업들의 투자확대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들이 개입하면서 농지확보의 문제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식민지 쟁탈전이었다는 사실과 현재 에너지 위기 속에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금융위기와 식량위기 속에서 새로운 출구로 표현되는 자본의 농지투자에 정부들이 앞장서는 모습은 신식민주의라는 비난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우리도 끔찍이도 비슷한 사례를 가지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보릿고개라는 시절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라를 일제에 빼앗겼던 시기 동양척식회사는 불법적으로 확보한 한반도의 농지에서 생산된 쌀을 모두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식량위기시대, 필요한 것은 해외농지개발이 아니라 국내 식량자급률의 향상이다. 해마다 10만ha 가량의 농지가 한국에서 사라지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정비를 명목으로 여의도 18배에 달하는 하천경작지를 없애겠다고 하고 있다.

더구나 농업선진화방안을 앞세워 농민들을 퇴출시키고 농기업만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소농을 죽이고 기업농만을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농업정책은 해외농지개발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철저히 이윤논리에 따르는 기업들이 과연 국내 식량안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국제식량가격이 폭등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판매처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해외진출기업들이 과연 싼 가격으로 국내에 공급할 것인가이다. 200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기아인구가 1억 명이 늘어나 현재 10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도 국제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카길 등의 초국적기업들은 철저히 이를 외면하였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곡물투기에 앞장섰다.

기업에 의해서 해외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국내에 들여오는 과정 역시 수입에 해당하며 국내에 실질적인 투자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리 또한 만무하다. 국민들은 다른 수입농산물 대신에 우리나라 대기업이 생산한 농약범벅 농산물을 사먹는 차이밖에 없다.

중소농 살리는 농업정책 펴야

오히려 정부는 국내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계속해서 증산을 요구하는 농민들을 억누르고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해외농지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중소농을 살리는 식량주권에 기반한 농업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논의 중인 농업선진화방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출농업분야와 관련해서도 우리가 먹을 것은 수입하고, 우리가 생산한 것을 수출하는 기형적인 농업형태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농업선진화방안을 당장 폐기하고 중소농을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논의를 농민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기 위해 항상 희생당해 왔던 농민들이 기업들의 농업진출을 위해서 희생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끝〉

 〈홍형석 전농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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