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선진화방안 이대로는 안된다 1.쌀 조기 관세화

식량주권 문제…범국민적 합의 필요

  • 입력 2009.06.15 15:51
  • 기자명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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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민관합동기구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를 만들어 이른바‘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농어업선진화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농어업선진화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안건은 쌀 조기 관세화, 보조금 개편 등 이 나라 농업을 송두리째 흔들 중차대한 문제들이다.

특히 보조금은 총액은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면서, 단순 보조금은 축소 폐지하고 공공성이 높거나 농업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분야에 보조금을 집중 투입할 방침이다. 결국 자조금은 기업농과 주업농을 육성하는 데 사용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개별농가에 대한 지원은 줄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농민단체들은 최근 논의중인 농어업선진화방안에 대해 농어업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농민을 농촌에서 내쫓고 농기업으로 채우겠다는 발상이라며 전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은 현재 추진 중인 농어업선진화방안에 따른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농업정책 방향을 모색해 보는 기획시리즈로 ‘농어업선진화방안 이대로는 안된다’를 마련하고, 그 첫 번째로 쌀 관세화 관련 논의를 게재한다.

쌀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2004년까지 관세화 예외품목으로 인정받았으며, 2004년 쌀협상에서 2014년까지 10년간 추가로 관세화 유예가 연장됐다. 관세화가 유예되면서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은 2005년 22만5천5백75톤을 수입하기 시작해 2014년까지 매년 증가해 40만8천7백톤까지 늘어난다. 

쌀 조기 관세화는 쌀의 전면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찬성하는 측은 의무수입물량 증가를 줄일 수 있으며, 현재 국제 쌀값이 비싸 국내에 더 이상 추가로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쌀은 농민과 국민 모두가 합의해야 할 문제이며 5년의 시간단축이 주는 경제적 효과보다는 사회적 비용이 더 들게 되고 DDA 협상 등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기관세화 약인가 독인가=쌀 조기 관세화에 찬성하는 측은 2014년까지 유예된 관세화를 당장 관세화로 전환해도 국제 쌀값(중단립종) 상승으로 관세를 부과해 수입하게 되면 국내산 쌀보다 가격이 높아 수입물량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개최 예정이었던 토론회에서 발표될 박동규 연구원의 자료에서는 2006∼2007년 미국산 중립종 수입쌀 판매가격은 80kg 당 22만9천원으로 추정되며, 이 가격은 경기미보다 29%, 충청·전라미 보다 52% 높은 가격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밥쌀용 수입쌀 도매가격은 국내산 산지가격의 70∼80%이며, 국제 쌀가격에 5%의 저율관세를 부과 후 농수산물유통공사가 공매를 통해 판매한 가격이므로 고율관세를 부과해 들어오는 가격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콩의 수입관세는 475%이지만 현재 475%의 고율 관세로 수입되는 콩은 없다. 정부가 국내 콩수급 조절을 이유로 매년 의무수입물량(18만5천7백톤)보다 추가로 8만∼9만톤의 물량을 5%의 저율 관세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의 경우도 고율관세를 부과한다고 하지만 국내 쌀 공급량이 감소하게 되면 저율관세로 수입하게 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콩의 경우는 국내 생산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입량을 늘리지만 쌀은 아직까지 국내 생산량이 부족하지 않아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쌀을 조기 관세화할 경우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개도국 지위유지는 관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우리나라가 쌀 관세화 예외를 받을 수 있는 근거는 WTO 농업협정 부속서 5장의 B항으로 개도국은 10년 동안 1~4%의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을 수입하도록 정하고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조기 관세화로 부속서 5의 B항을 포기하는 것은 개도국 우대를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DDA 협상에서 지위를 받는데 불리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쌀을 관세화 예외품목으로 인정받은 것은 농업수출국들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를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쌀 관세화가 되면 향후 DDA 협상에서 농업수출국들이 더 이상 개도국 지위 유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DDA 협상이 타결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될 경우, DDA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고율관세를 부과하기 어렵게 된다. 현재 DDA 협상에서 선진국은 자국 내의 중요 농산물을 민감품목으로 지정해 보호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지 못하게 된다. 쌀이 DDA 협상에서 선진국 민감품목으로 지정되면 270%대의 관세를 부과하게 되어 수입쌀 가격은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어진다.

앞의 자료에서는 쌀이 선진국 민감품목으로 지정되면 2019년에는 수입쌀 가격이 10만8천3백19원(80kg)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 특별품목으로 지정되면 수입쌀 가격은 17만1천9백70원에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어 쌀 조기 관세화가 DDA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계 관계자는 “DDA 협상이 지지부진한만큼 협상 추이를 보면서 쌀을 조기에 관세화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만과 일본이 쌀을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일본의 경우 종량세로 환산하면 1000%, 대만도 50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에 쌀 수입이 증가하지 않았다”며 “수입쌀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높은 관세를 부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적 합의 전제돼야= 쌀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쌀값이 오르면 농민이 좋고 쌀값이 떨어지면 소비자인 국민이 좋다. 따라서 쌀 관세화로 인해 쌀값이 오를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는 농민뿐만 아닌 전 국민적인 사안이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쌀값이 오르는 것이 단지 생산비 증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국내산 쌀이 부족할 때 수입산 쌀값이 오르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농민이 아닌 국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원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은 “현재 정부가 조기관세화를 확정한 듯 밀어붙이고 있다”며 “쌀은 식량주권의 문제로 농민 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부장은 “농민단체들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기관세화 있어 모든 것을 공개한 상태에서 이야기해야지, 지금처럼 농어업선진화위에서 논의하는 방식으로는 합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농업계 관계자도 “정부의 논의가 구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자료로만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논의가 적절하지 않다”며 “쌀 조기관세화의 문제를 단지 의무수입물량의 증감만을 갖고 득실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농식품부도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민들과 토론 등을 통해 충분히 합의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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