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쌀 관세화 논의

  • 입력 2009.06.01 07:55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쌀 관세화와 관련한 논의가 분분하다.

쌀 관세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최근 국제 쌀값과 환율이 급등해서 쌀시장을 관세화를 통해 개방하더라도 관세화 시점의 최소시장접근(MMA)방식으로 수입하는 물량 이외에는 추가로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관세화시점이 늦어질수록 MMA물량이 증가하므로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관세화를 하는 것이 유리하고, 더구나 대외적인 여건이 관세화를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일본 주식용 쌀은 100% 자급
 
더 나아가서 지금이라도 관세화를 실행하면 쌀 수입관세를 300∼400%대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관세화로 수입물량이 감소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관세화하기에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관세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는 것을 일본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1998년말 쌀 관세화정책을 결정하여, 99년 4월 쌀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했다. 당시 4년 연속 풍작과 최소시장접근(MMA)방식으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 때문에 쌀 재고량이 무려 380만톤으로 국내소비량의 40%에 이를 정도로 재고처리가 한계에 도달했다. 따라서 일본이 쌀 관세화정책을 결정한 기본적인 배경은 MMA 수입물량의 증가를 둔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은 쌀 관세화 정책으로 전환하기에 앞서서 정·관·농이 참여하는 ‘WTO 3자회의’를 설치하여 국내대책을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즉, 생산자단체는 관세화를 수용하는 대신에 정부에 대하여 쌀 정책의 방향(쌀농사경영안정대책, 전환보상금지급, 농업경영체 육성, 고율관세에 의한 국경보호 등)을 확보하고 이를 의회가 보증하는 형식을 취하여 관세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는 1998년말 896만톤이었던 쌀생산량이 2007년에는 871만톤이라는 미세한 감소로 나타났다. 또한 미곡 수입량도 1998년 63만톤에서 2007년 64만톤으로 그다지 증가하지는 않았다. 1998년에 95%였던 쌀 자급률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으며, 주식용 쌀은 100%자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관세화이후에도 쌀 자급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관세화가 가져올 막강한 파급력을 인식하고 ‘식료·농업·농촌 기본계획’ 등을 통하여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생산과 소비확대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경우 농업을 살리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하는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작년의 세계적 식량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정부는 국내자급기반의 확충보다는 해외농업생산기지개발로 눈을 돌렸다.

명색이 ‘제2의 녹색혁명’이라고 내놓은 정부안에는 논 면적이 101만ha(여름철 벼 재배면적은 95만ha)에서 2012년에는 92만ha(여름철 벼 재배면적은 86만 ha)로 4년 사이에 9만 ha의 논이 사라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1999년 제정된 농업농촌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는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정하는 일을 미루다 2007년 12월이 되어서야 국회에 ‘식량자급률 목표치 달성을 위한 기본계획(안)을 제출했는데, 목표치로 확정한 곡물 자급률조차 당초 식량자급률자문위원회가 제안한 목표치였던 29%보다 4%p나 더 낮췄다.

더욱이 2007년 11월 22일 통과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기능을 증진하고, 안전한 농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농민과 농촌주민의 소득안정,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쌀 관세화가 이루어진다면 대만의 실패한 쌀 관세화가 한국에서 재연될 수밖에 없다. 2004년도에 쌀 관세화로 전환한 대만은 2003년도에 쌀을 134만톤 생산했지만, 2007년에는 110만톤에도 미치지 않았다. 단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생산량이 20%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농민들 막다른 길로 내몰면 안돼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쌀관세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합리화하고 있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관세화의 실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농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쌀 관세화 문제를 농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민을 되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더 이상 내몰지 말아야 한다. 쌀 관세화에 앞서 우리의 농업을 지키고자 하는 정부의 진정성을 먼저 보이는 것이 순리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