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사람들 (2)

  • 입력 2009.05.24 17:41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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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다리를 잡고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아주머니들의 표정을 일일이 살펴본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무슨 말로 이 냉랭한 분위기를 한방에 날려버릴까 하고 담배 한 대가 다 타도록 생각했지만 뾰족한 묘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따나 분위기가 와 이런기요, 아지매들 싸웠는기요?”

“아이고, 아이들도 아이고 싸우기는 누가 싸우겠는기요. 그냥 입씨름이 쪼매 있었구마.”

일행 중에서 그중 젊은 아주머니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한다.

“와요? 서로 안면 터라고 자리 비워줬더니 그 단새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내가 어데 자기 욕을 했나. 어제 마늘밭에서 말 많던 그 여자 이야기를 해 주는데 욕하지 말라고 하이 내가 도분이 안 날수가 있는기요?”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가 눈길은 머리 위의 복숭아 가지에 던져 놓고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 말을 받은 다른 여자가 쫑알거렸고 다시 입씨름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 여자가 어제 마늘밭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 흉을 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는데 그 말을 듣던 한 여자가 그런 말은 듣기 싫다고 면박을 주자 입다툼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참 별것도 아닌 걸로 싸움을 하는 여자들의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지매들, 술 한 잔 받아 오끼요? 오전부터 한잔 하시더.”

나는 한번 슬쩍 눙쳐본다. 계속 이런 분위기라면 오전만 일을 시키고 보내버리고 싶다.

“아이고 사장님요, 술 마시믄 일은 언제 하는기요.”

나이가 제일 많은 여자가 말을 받는다. 그런데 그 말투가 얼음장처럼 차서 쌀쌀맞다.

“일이사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되고, 아지매들 화해술이나 당장 한잔 하시더.”

“아이고, 안 마실라느마. 이 집 사장님 일 안 했다고 일당 안 주믄 그 일을 우야는기요.”

“일당이사 오늘 못 받으면 내일 받으면 되지요. 소털같이 많은 날에 개털같이 놀아 라고 했는데 치아뿌고 마 한잔 하시더. 술 받아 오끼요?”

“사장님 그키지 마소. 노가다 삽자루 놓으믄 돈 떨어진다고, 우리도 사다리 놓으믄 돈 떨어지는데 개털같이 놀 팔자가 우째 되겠는기요.”

인력시장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단단히 교육을 받은 느낌이다. 영 틀림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호칭을 받는 내 기분은 어째 개똥을 밟은 것같이 좀 떨떠름하다. 뒤에 이 아주머니들을 통해서 들은 얘기지만 용역회사에서는 그들이 일하는 곳의 주인이 팔십이 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불린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무조건 사장님으로 부른다니 먹고살기 힘든 세상의 한 단면을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용석이 트럭 화물칸에 실려 점심을 먹으러 가서 밥그릇을 받아놓고서야 한 여자가 다른 한 여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사과를 하는 것을 나는 모른 척 귓등으로 들었다. 밥그릇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이 많은 여자는 사과를 받아들였고 둘은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밥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밥을 먹는다는 것, 밥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것, 밥이 인간을 화해시켜주는 진실이라는 것을 짠한 마음으로 궁굴렸다.

하루해를 보내는 것이 참 힘들었던 하루였다. 나는 끊임없이 아주머니들이 내려온 사다리 자리에 다시 사다리를 대고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곁가지 한두 개 빠트리는 것이야 농사꾼들에게도 흔한 일이지만 큰가지를 통째로 빠뜨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세 개나 네 개만 달아야 할 가지에 일곱 개 여덟 개씩 달아 하염없이 적게 달아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에 마친 나무로 돌아가 보면 손도 대지 않은 가지가 너무 많았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자 나는 내일도 인력시장 사람들을 다시 데리고 와야 할지 갈등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사이 시간은 여섯 시가 되었고 밭머리에서 택시가 울리는 경적소리가 들판의 적막을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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