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밥과 공기밥

  • 입력 2009.04.27 12:58
  • 기자명 한도숙 전농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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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식당을 들르면 의례 밥 한 공기가 나온다. 공기, 그 작은 그릇에 담긴 한 숟갈거리도 안되는 밥을 보면 왠지 허기가 든다. 나는 촌놈이니까 그럴지 모르겠지만 한세대 전 우리 아버지는 밥 사발에 그득히 퍼 올린 고봉밥을 드셔야 밥 먹은 것 같았다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 쌀은 신이었다. 아니 포한이었다. 아니 생명이며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런 쌀이 지금 어떤 처지가 되었는가. 공산품 수출의 발목을 잡는 고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철모르는 농민들이 비교우위도 모르면서 우격다짐 떼법을 쓰는 애물단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농산물 수입개방을 모두 다 하고도 농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쌀만은 10년 유예를 두어서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우위론자들은 걸핏하면 이 문제를 들고 나와 농민들 가슴을 찢어 놓기 일수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변화된 국제환경들로 인하여 DDA협상에서 쌀의 관세 감축률이 변화가 없거나 미미할 것으로 판단하여 우리가 조기에 개방을 하면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손톱 밑에 가시든 것은 알아도 염통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조그마한 이익에는 계산이 환 하지만 장래 국가의 대계에는 눈이 멀어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여차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이 나라 농업의 틀을 무너뜨리고 나면 당장에 거둔 이익보다 몇 백 배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축날지 모르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곡물 상황이 안정추세에 있지 못하고 오바마 정권도 한국쌀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마당이다. 장태평 장관은 농민단체의 의견을 묻겠다고 했다지만 이 문제는 장관직을 걸고 당장의 이익에서 눈을 떼고 멀리 국가 장래를 바라보도록 정책을 펴 나가야 할 것이다.

쌀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시절 “쌀보다 분식이 영양가가 높다” 라고 선전하며 미국아이들 키가 큰 것이 밀가루 때문이라고 국민을 호도했던 역사가 있다. 지금 정부가 또다시 국민을 호도하여 쌀시장 개방을 밀어부친다면 그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고봉밥은 우리민족의 염원이었다. 그러나 고봉밥이 자취를 감춘 것은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안정이 보릿고개를 없애는 것이고 그로 인한 식량증산과 절미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모든 식당과 공동급식에서 밥사발을 공기(빈그릇이란 원래 뜻이 덜어먹는 그릇으로 뜻으로 변함)로 바꾸어 낸 것이다.

하지만 두 그릇을 비워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조선 사람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음은 쌀농사야 말로 우리민족의 정체성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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