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봄날은 온다

  • 입력 2024.03.24 18:00
  • 수정 2024.03.24 20:47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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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얼마 전 파리 도심에 트랙터가 가득 찼다. 그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프랑스 농민들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즉석에서 토론하는 모습은 더 기억에 남는다. 농민과 대통령의 즉석 만남이 이뤄졌다는 점이나, 즉석 토론이 2시간 동안이나 이뤄진 점 등은 우리나라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트랙터 시위로 시작된 유럽의 농민투쟁은 농산물 가격 대책에 대한 대통령의 약속과 엘리제궁 초대까지로 이어졌다. 유럽 농민의 트랙터 시위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몇 달 동안 이어졌던 유럽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겪고 있는 고통이 우리 농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과도한 수입농산물로 인한 국내 농산물의 가격하락 피해는 공통된 아픔이었다. 하지만 이를 공감받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너무 큰 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 악화로 인한 작황 부진의 어려움도 사회적 공감보다는 가격상승의 요인으로만 부각돼 왔다. 기후위기 대책으로 스마트팜, 수직농장이 해결책인 양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보다는 산업적 측면만 남은듯해 씁쓸할 뿐이다.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 차액 보전도 없는 상황에서 시설원예 농업의 생산비가 얼마나 막대한지는 잘 알려고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비료, 농기계, 농지 등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대다수 농민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빚을 진 빚쟁이다. 이 부채의 규모가 커지고 커져 농민의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농민은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서 농업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만으로는 그 빚을 도저히 갚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가 부채의 문제는 그저 농민 개개인의 몫만은 아니다. 시장개방의 흐름 속에서 농업을 제물로 바친 결과다. 농가 부채를 증가시키는 다양한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생산비 문제, 더 근본적으로는 농산물 가격안정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농협의 역할도 다시금 되새겨본다.

과거 농업협동조합의 시초는 독일의 빌헬름 라이파이젠이 창시한 신용조합에서 출발한다. 19세기 독일 서부지역의 대다수 소농은 농사철 비료, 농약, 종자를 외상으로 구입해 수확 후에 고리채로 변제하거나 상인에게 저가로 인도하는 비참한 환경이었다. 1849년 독일 농촌의 고리채 해소 운동으로 대부사업이 개시됐고, 1862년 세계 최초의 농촌 신용조합이 독일에서 설립된 것이 지금의 종합농협 원조라 할 수 있다. 당시에 사람들은 협동조합을 선택해 위기를 극복했다.

우리나라 농협의 출발은 독일과는 사뭇 다르지만, 한국도 1960년대까지 심각한 고리채로 농민이 고통받았고, 이에 농협 상호금융이 출범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제 농협은 성과급으로 잔치를 벌이지만, 농민 조합원은 농지를 담보로 빌린 대출금도 갚지 못하고 있다. 160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의 농촌은 과거보다 더 비참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무엇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농지를 담보로 빌린 대출을 갚지 못하면 농민은 결국 농민일 수 없게 된다. 올해 주요생산비 지원 예산 중 비료 가격안정 사업(무기질비료) 예산도 삭감된 상황에서 현장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농민과 함께할 사회적 연대의 힘을 키워내야 한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목소리는 힘이 없지만 하나로 모아진 연대의 목소리는 큰 힘을 낼 수 있다. 농민단체, 먹거리단체, 그리고 농업·농촌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강한 연대가 지금의 팍팍한 농민의 삶을 변화시켜 낼 힘으로 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전국은 본격적인 봄을 맞이했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벚나무, 유채 등 예년보다 더 빨라진 개화로 곳곳에서 눈에 띄는 봄꽃이 반갑기도 놀랍기도 하다. 환한 봄꽃에 가슴이 설레고 꽃향기에 취해 잠시나마 행복에 젖는다. 봄을 맞이한 농촌은 본격적인 농번기에 접어들 것이다. 봄이 안겨주는 설렘처럼 농민들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명나게 들녘을 거닐며 신명나게 농사짓는 그런 봄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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