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처음 열린 주민토론회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8:50
  • 기자명 김성보(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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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보(전남 나주)
김성보(전남 나주)

3월 11일, 농협 2층에 구름 인파가 몰렸다.

주민토론회 시작하기 1시간 전, 100여 개가 넘는 의자를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0분을 남기고서야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절반의 자리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참석자 수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주민토론회이기에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최선을 다해 참가하신 주민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오후 2시가 되었을 때 주민토론회 참석자는 100여 명이 넘어갔다. 부족한 참석자 명부를 추가로 복사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석 등록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과 용기가 백배했다.

“지금부터 ○○면 주민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가 터졌다. 인사말을 하는 주민대책위원장의 마이크 잡는 손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달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마을마다 서명을 해주신 주민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격한 흥분을 참아가며 강렬한 호소를 쏟아부었다.

“태어나고 자란 60년 세월 동안 참고 견디어왔습니다. 이제는 돈사의 악취도 참을만합니다. 그런데, 음식물쓰레기폐수까지 들여와서 가축분뇨와 함께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것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주민 여러분, 끝까지 막아냅시다!”

밤을 새워 준비한 ‘현애원 가축분뇨공공처리장 증설’ 철회 주민토론회 프레젠테이션을 한숨도 쉬지 않고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시청 상하수도과장에게도 설명할 기회를 드렸다. 그때부터였다. 송곳 같은 질문과 의견이 시청 상하수도과장에게 쏟아졌다. 시장이 결제했냐, 왜 증설을 하느냐, 가축분뇨에 음식물쓰레기폐수까지 더해야겠냐, 유튜브를 찾아봤더니 바이오가스 생산이 실효성 없다더라, 행정은 주민들 얘기는 듣지 않고 멋대로 추진하느냐, 똥냄새 나는 곳에 살아봤느냐, 퇴직하고 귀농했는데 친구들이 왜 이런 곳에 사느냐 묻는다 등 구구절절 하소연이 쏟아졌다. 지역구 시의원 3명도 시청 집행부로부터 보고도 받지 못했다며 발뺌했다. 현장 실사도 없이 주민의 의견도 깡그리 무시하고 어떻게 471억원 사업이 추진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말미에 분위기 파악을 못 한 면장은 헛발질에 고성까지, 즉석에서 주민들의 반발만 키워내는 볼썽사나운 연출을 하고 말았다. 120분 동안 물 한 모금도, 화장실 가는 사람도, 쉬었다 하자는 한마디도 없이 20여명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발언이 이뤄진 토론회였다.

22년을 이곳에 살면서 30대에 이장도 했고 농협 이사도 했고 농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오늘같이 많은 면민들이 모여 중대한 지역 현안을 두고 주민토론회를 전문가 뺨치는 수준 이상으로 자기 발언을 하시는 주민들의 용감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결국, 시청 상하수도과장은 꼬리를 내렸다. 장소와 관련하여 이 지역이 아닌 제2, 제3의 대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한자리에 모인 집단의 힘이자, 한목소리로 외친 주민들의 승리였다.

175명의 참석자 중에 118명이 주민의견서에 응답했다.

음식물쓰레기폐수를 포함한 ‘현애원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 증설’은 철회돼야 한다. 2시간 토론을 끝까지 경청하고 주민의견서 속 ‘철회해야 한다’ 문항에 주민의 99%가 찬성했다.

급격한 아파트 도시화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 생활 쓰레기로 청정지역 농촌 산야가 몸살을 앓고 있다. 탄소중립과 바이오가스 생산목표제에 떠밀려 각종 혐오시설이 탄소중립의 최종 보루인 농촌 산야 구석구석을 탐내고 있다. 엄청난 국비와 지방비 등의 세금을 바이오에너지라는 포장을 씌워 기업화된 소수의 양돈업자에 의해 발생하는 가축분뇨와 음식물쓰레기폐수로 만든 바이오가스가 미래의 에너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떠밀려 인구소멸과 고령화로 힘없는 농촌만 희생시키는 일이 매일같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행정 권력이 민의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작지만 매우 현명하고 상식적인 농촌주민들이다.

시장님, 주민들의 뜻에 따르십시오. 밀어붙이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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