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 다양성 강화의 1등 공신, 토종벼로 만든 우리 술

  • 입력 2024.03.17 10:55
  • 수정 2024.03.17 11:0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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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맛의 다양성, 원료의 다양성이 핵심 가치였던 전통주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그 다양성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 우리 술맛의 풍성함을 복원하는 과제가 대두된 2024년 현재,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맛과 원재료의 다양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일부 농민과 양조인의 공조가 눈에 띈다.

원재료 다양성을 강화하는 핵심 원료는 토종벼다. 일제강점기 이전 한반도엔 1500여종의 토종벼 품종이 존재했다. 그러나 일제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든 생산량 증대가 용이한 품종의 선별에 집중하면서 토종벼 품종 상당수가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 문제 인식을 가진 토종벼 재배 농민들은 벼 품종 다양성 복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앞장서는 농민 중 한 명이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경기 고양)다.

이근이 대표는 지난 3년간 양평군과 진행해 온 토종자원 활성화 관련 협력이 종료됨에 따라, 바로 옆 여주시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이 대표는 각지의 토종벼 재배 농민, 연구자, 양조인 등과 함께 올해 1월 ‘토종벼품종연구회’를 결성해, 토종벼의 생산 및 활용 방안을 다각적으로 연구하는 중이다.

토종벼품종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전국의 토종벼 재배 농민들은 지난달 21일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 생가유적지 내 문예관에서 '제9회 전국 토종벼 농부대회'를 열어 토종벼의 품종별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선 토종쌀 기반 가공품 제조업체들의 참여하에 토종쌀 가공식품 시식 코너가 마련되기도 했다.

충북 충주시의 양조장 ‘블루웨일브루하우스’에서 토종벼 ‘백팔미(오른쪽)’와 지역산 유기농 홉 등을 활용해 만든 수제맥주 ‘백팔미인’.
충북 충주시의 양조장 ‘블루웨일브루하우스’에서 토종벼 ‘백팔미(오른쪽)’와 지역산 유기농 홉 등을 활용해 만든 수제맥주 ‘백팔미인’.

특히 우리 술맛의 다양성을 복원하려는 소규모 양조장 운영자들과 토종벼품종연구회 간 연계가 눈에 띈다. 일례로 충북 충주시의 수제맥주 양조업체 블루웨일브루하우스(공동대표 박선애·장위봉)는 지난해 우보농장으로부터 받은 토종벼 품종 ‘백팔미(108미)’를 활용해 저알콜 맥주 ‘백팔미인(百八米人)’을 개발했다. 108가지 토종벼 품종의 특성을 혼합시킨 품종인 백팔미의 성격에 맞게, 108가지 토종벼의 맛이 상상되는 복잡한 맛을 내고자 했다는 게 블루웨일브루하우스 측의 설명이다.

블루웨일브루하우스는 2017년 이래 국산 농산물(가급적 충주산 농산물 우선 활용) 기반 맥주를 만들어 왔다. 이곳의 대표 제품은 충주산 쌀과 아카시아꿀로 만든 ‘미소에일’, 경기도 화성시 쌀인 수향미와 화성산 밀을 혼합해 만든 ‘화썸라거’·‘화썸에일’ 등이다.

맥주 제조 시 쓰는 홉은 충주에서 유기농 홉을 재배하는 장동희 농업회사법인 맥주만드는농부 대표(블루웨일브루하우스 이사)가 공급한다. 국내 유통 맥주에 쓰이는 홉의 절대 다수가 미국·호주·독일 등지에서 수입되는 현실에 맞서, 장동희 대표는 “지역에서 생산한 홉을 지역 내에서의 수제맥주 가공 과정에 바로 써야 진정 맛있는 수제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 아래 홉 농사를 짓고 있으며, 상시적으로 블루웨일브루하우스 측과 만나 ‘국산 원료 기반 수제맥주’의 참맛을 내기 위해 연구·실험을 전개한다.

이러한 그들로서도 토종벼와의 만남은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충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백팔미인이다. 시중 맥주 대비 새콤달콤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저알콜 맥주인 백팔미인엔 토종쌀 성분이 전체 성분 대비 50% 함유됐다.

블루웨일브루하우스와 맥주만드는농부는 향후 ‘100% 국산 원재료 수제맥주’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놨다. 특히 맥주 속 토종쌀 비율을 현재의 50%에서 70%로 늘리고자 한다. 장동희 대표는 이와 관련해 “국산 일반 쌀 1kg당 가격이 2000원인 반면 토종쌀은 1kg당 1만2000원으로 6배 차이 난다. 가격경쟁력 면에선 토종쌀 활용이 쉽진 않다”고 한 뒤 “결국 (판로의) 해답은 ‘직거래 기반 계약재배 체계’ 구축이다. 농민 한 명이 생산한 토종쌀 전량을 양조장 한 곳에서 받아 활용할 수 있게 할 방안을 토종벼품종연구회 차원에서도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의 양조장 ‘온지술도가’에서 토종벼 ‘구령찰(왼쪽)’ 등을 활용해 만든 전통주들.
서울 은평구의 양조장 ‘온지술도가’에서 토종벼 ‘구령찰(왼쪽)’ 등을 활용해 만든 전통주들.

서울시 은평구의 온지술도가(대표 김만중) 또한 우보농장에서 토종벼를 받아 전통주를 만드는 곳이다.

김만중 온지술도가 대표는 2018년 이래 국산 농산물로 전통주를 만드는 데 힘써 왔다. 올해 내일의식탁 주최 ‘참발효어워즈 2024’에서 탁주 부문 대상을 수상한 온지술도가의 대표 술, ‘서촌막걸리15’는 경기도 김포시에서 생산한 찹쌀과 전통 누룩을 활용해 만든 알코올 도수 15도의 막걸리 원주다. 그밖에도 경북 문경시와 강원도 삼척시의 오미자를 활용한 ‘온지 오’, 제주도산 레몬을 껍질까지 갈아 만든 ‘온지 온’, 전북 정읍에서 들여온 쑥으로 만든 ‘온지 쑥’ 등이 대표적인 술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새로 만들어낸 술 ‘월간 온지’를 소개했다. 월간 온지는 ‘구령찰’·‘법판화’·‘붉은차나락’ 등의 토종쌀을 기본으로 활용하되, 매월 다른 초재(홉·쑥·표고버섯 등)를 곁들여 만들어낸 전통 누룩(월화곡)으로 만든 술이다. 매월 초재를 다르게 사용하는 등 월화곡 제조 방식에 변화를 줌으로써, 월간 온지는 이름대로 매월 새로운 맛과 향의 술을 선사한다.

월간 온지에 활용하는 토종벼는 어떤 품종들일까? 원래 이북지역(함경남도 홍원, 황해북도 황주 등)에서 재배되던 구령찰 품종은 까락 없는 커다란 낟알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린 토종벼로, 쌀알이 큼지막하고 찰기가 강해 막걸리 빚기에 적합한 품종이다. 법판화 품종은 붉은색의 짧은 까락이 달려 있고 이삭당 낟알이 180여개로 수량이 많은 편인 토종벼다. 붉은차나락은 토종벼 중 사실상 유일하게 잎이 붉은색을 띄는 품종이다.

김 대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막걸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주류가 된 입국 막걸리 즉, 단일한 배양균을 활용해 만든 막걸리로, 전통 막걸리와 달리 풍부한 맛을 접하기 어렵다. 입국 막걸리는 도수를 낮춰서 맛이 덜하다 보니 감미료·아스파탐 등을 넣어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방식의 토종쌀 기반 전통 누룩 활용을 통해 전통주 맛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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