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막이 그럴싸한 집으로 거듭났다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8:50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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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명코 봄이로구나(1873)

해동이 되자 병호네와 김기범의 원정마을 친구 박치수 억구지, 강화도에서 온 다금발이는 엄재에 있는 숯막에 모였다. 눈비나 면하려고 만든 숯막 옆에 칸을 달고 구들을 깔아 사람이 살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필상은 다금발이에게 노는 방에 머물며 농사일을 거들고 집을 비우면 집안일도 맡아 달라 요청했지만 다금발이는 빈집이 있으면 골라 살겠다는 뜻을 비쳤다. 필상이 처음에는 서운하였으나 다금발이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막 고삐가 풀렸는데 종살이로 전락할 우려가 있었다. 병호도 거야마을이 번다하므로 관의 눈에 띄어 관노쯤으로 박힐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다. 그때 기범이가 원정마을 숯막 주인에게 다금발이를 머물게 하고 숯을 굽거나 내다 팔도록 주선하겠다 제안하였다. 생각해보니 유용한 제안이었다.

주변이 소나무 천지여서 기둥과 보로 쓸 나무야 몇 그루 도벌해도 상관없지만 한 칸일망정 사개를 파고 들보를 얹는 일은 대목장이의 손이 필요하였다. 그 또한 기범이가 원정마을 대목장이에게 청하여 간단히 해결하였다. 대목장이는 끌과 대패 등을 챙겨와 베어야 할 나무를 지정하고 사람들이 날라 온 것을 다듬어 사개를 팠다. 그런 다음 주추를 앉히고 기둥 아래를 그레질하여 높낮이를 맞추더니 사흘 만에 도리를 얹었다. 대목 일이란 진척이 없다가도 뚝딱 이루어지는데 도리 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종도리를 올리기까지 닷새 만에 일이 마무리되었다.

벽을 치고 구들을 까는 일에 황토가 필요하므로 병호와 기범이는 삽을 들고 남향받이 언덕의 흙을 져 날랐다. 평소 하지 않던 일이라 일이 더딜 뿐 아니라 구슬 같은 땀을 흘리기 일쑤였고 퍼질러 앉아 물 마시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억구지와 다금발이 등은 살아오며 눈대중한 것만으로도 반 목수가 되어 처음 하는 일도 거뜬하게 해냈다. 같은 일을 해도 기범이나 필상과 병호는 금세 흙투성이가 되는 것이지만 박치수 등은 종일 일하고도 옷이 깨끗하였다.

“딱따구리 쪼듯 머리가 아프더니 개운하네그려. 경서나부랭일랑 치워버릴까부다.”

연초를 눌러 재우던 기범이가 물을 들이켜는 병호에게 중얼거렸다. 병호는 서까래 위에 싸릿대를 깔아나가는 억구지를 바라보았다. 지난봄 과장에서 사달이 난 후 그 역시 경서를 던져두었는데 기범이는 집을 나가 며칠 만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내년쯤 별시가 열릴 테지만 병호 역시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기창이나 송진사도 시간을 줄 심산인지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병호가 황토를 이겨 만든 알매를 지붕에 던져주는 박치수와 다금발이를 가리켰다.

“저 일하는 것 좀 봐. 경서만 재미로 알았는데 근사하지 않은가. 방 한 칸 달아내는 일에도 질서와 격식이 있단 말이지.”

“거기 동무님들은 세월 좋구만. 지붕은 올라가는데 제우 저것 놓고 해찰인가?”

억구지는 서까래에 알매를 치대며 기범이와 병호가 베어놓은 억새를 가리켰다.

“제길헐, 상전도 저런 상전이 없네.”

기범이가 곰방대를 털고 낫을 챙겨 일어섰다. 병호도 지게를 둘러메는데 조도를 타고 술통개를 맨 희옥이가 나타났다. 저마다 반가워하며 한 마디씩 건넸지만 심통이 난 기범이는 지게를 희옥이에게 밀어버렸다.

“술이 문제가 아녀. 메고 따라와.”

필상과 희옥이까지 네 사람은 낫을 들고 억새 군락지를 찾아 나섰다. 동무들을 만나 기분이 좋았던지 희옥이가 단가를 뽑더니 기범이와 필상을 불렀다. 셋이 모인 자리에서 쑥덕이는 소리가 들리고는 웃음꽃이 피었다.

“날 빼고 무슨 작당들인가?”

“역적모의일세. 자넨 미장가니 목숨을 부지허소.”

병호에게 소리친 필상이 더 크게 웃었다. 그들이 억새를 한 짐씩 부려놓자 새참 때가 되었다 하여 희옥이가 들고 온 술통개를 풀었다.

“내일 올라올 적에는 짚단이나 댓 뭇 지고 오게. 벽을 세우려면 필요하지.”

박치수는 일을 시켜먹는 재미가 쏠쏠한지 기범이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걸 꼭 우리가 해야 하남?”

기범이가 타박하였고 억구지가 말하였다.

“이 산중에서 어찌 지푸라기를 얻겠는가. 집에 가는 사람이 맡아야지.”

숯막 일이 시작된 후 억구지와 박치수 등은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새참이 끝나 다시 억새밭을 찾아 구슬땀을 흘리는데 희옥이가 이번에는 병호를 불렀다.

“다음 달 보름이 할머니 회갑이여. 참석할 게지?”

“해야지.”

“자네가 종정마을 조카와 같이 좀 왔으면 하네. 난 대소사를 처리하려니 짬이 없을 게야. 할머니가 조카를 보았으면 하는구먼.”

“거야마을 형님이 가까우니 모셔 가면 되겠네그려.”

“일이 있다 하니 별수 있나. 기범이도 아버님 기일이라 하구.”

“그럼 필상 형님의 사정을 들어보고 상의해서 처리함세.”

막걸리를 마시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여 두어 번 억새를 져 나르자 해가 기울었다. 기범이와 병호는 지금실로 내려가고 필상은 희옥이를 데리고 거야마을로 향하였다. 이튿날 기범이네가 들판의 짚눌에서 몇 뭇 뽑아 지고가자 박치수가 혀를 찼다.

“이리 말짱한 걸 져오면 어쩌라는 겐가? 황토에 섞으려면 눈비 맞아 썩은 거라야 한단 말일세. 과거시험엔 무슨 문제를 낸다는 건지 원……. 다시 가져오게.”

기범이는 대번에 씩씩대며 콧김을 부는데 병호가 다시 가자며 지게를 걸머졌다. 그들이 빠져나올 즈음 사람들 킥킥대며 좋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쥑일 놈들. 우리가 영락없이 저것들 머슴일세.”

그들은 재를 내려와 첫 마을에서 썩은 짚단을 얻고 희옥이가 했던 것처럼 막걸리도 한 통개 장만하였다. 그새 희옥이는 봉상으로 떠나고 남은 사람은 지붕에 일 억새를 엮는 중이었다. 억새가 엮어지자 이엉을 지붕에 얹어 치마 두르듯 까는데 눈비가 치지 않도록 이틀에 걸쳐 두툼하게 마감하였다. 산간이라 구하기 쉬울 뿐 아니라 수명도 긴 억새로 지붕을 이었으니 숯막은 여염의 농가보다 훨씬 버젓하였다. 그러나 구들은 아무나 놓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에도 기범이의 주선으로 고향마을 인사가 올라왔다. 그는 온종일 산을 쏘다니며 이맛돌이며 불목돌에 소용될 돌을 골라 실어오게 하더니 굴뚝 자리를 정하고 아궁이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가 구들을 놓는 사이 병호네는 재 아래 운암강에서 고래 바닥에 채울 콩자갈을 실어 날랐다.

사흘째 되는 날 구들 위에 거미줄치기를 하고 불을 놓아보니 연기가 잘 잡혀 다시 콩자갈을 깔고 황토를 덮었다. 연이어 벽 중간 중방에다 간짓대를 넣고 싸리를 세운 후 그간 퍼 나른 황토를 이길 참에 박치수는 삭은 짚단을 눌러 밟으라며 기범이와 병호에게 과제를 주었다. 그래야 잘 버무려질 뿐 아니라 짚가리 사이에 공기가 들어 방한 방열에 좋다는 핑계를 댔지만 메겡이로 칠 일을 부러 그런다며 기범이는 입이 한 자나 나왔다. 마침내 작두로 썬 볏짚을 황토에 개어 미장을 하는데 아직도 만취하면 팔려간 여인을 부른다는 박치수가 해본 가늠이 있어 곧잘 해내었다.

밥만 먹으면 엄재에 올라 웃고 떠들며 힘을 쓴 덕에 움막이나 다름없던 숯막이 보름 만에 그럴싸한 집으로 거듭났다. 기존 움막은 부엌으로 쓰고 새로 달아낸 곳에 방을 들였지만 먼저 있던 곳까지 지붕을 얹어 집은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불을 넣을 수 있는 방이 생긴 데다 부엌까지 딸렸으니 앞으로는 몇 날 며칠이고 눌러앉아 술추렴을 해도 된다며 일행은 다 같이 즐거워하였다.

집이 완성되어 한 바퀴 둘러보는데 병호는 지금까지 했던 어떤 일보다 뿌듯하여 가슴이 뻐근해졌다. 상두산에 올라 목검을 휘두르고 택견을 연마하였으나 일을 하면서 새로 힘을 쓰자 놀던 근육이 깨어나 마치지 않는 데가 없었지만 이제는 잦아져 몸이 새로 만들어진 듯하였다. 숯막을 완성해놓고 올봄부터는 손수 채마 밭에 상추라도 심으련다고 필상은 소회를 밝혔다. 그곳에 올라 웃통을 벗고 땀을 흘리는 사이 어느덧 날이 풀려 바람이 다소곳해지고 나무마다 꽃눈 움트는 게 보였다. 일을 하는 동안 다금발이는 새로 만난 사람들과 두루 친해졌으며 처지가 비슷한 억구지하고는 동기간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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