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백년의 향촌건설과 시진핑의 향촌진흥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8:51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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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매년 초 <중앙 1호 문건>을 발표한다. 이 문건은 중국공산당과 각급 정부가 그해에 가장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업무를 위한 지시서다. 올해도 이 문건의 핵심 주제는 ‘삼농(농업·농촌·농민)’이었다. 후진타오 정부 집권 초인 2004년부터 이 문건의 핵심 주제가 삼농이었으니 올해까지 21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21년 동안 이 문건의 주제는 다양했다. 그 핵심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식량의 안정적 생산, 농민의 소득 증대, 농업기술의 현대화가 그것이다. 그 외 농지개혁, 수리개선, 농촌관광, 환경개선, 복지서비스, 향촌 거버넌스, 빈곤퇴치, 호구 문제 등에 관한 내용은 그해 상황에 따라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올해 이 문건에는 ‘천만공정(千萬工程)’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 공정(프로젝트)은 약 20년 전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浙江省) 당 서기 시절 농촌발전을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전체 4만개의 농촌마을(행정촌) 가운데 1만개의 마을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그중 1000개 마을은 샤오캉사회(小康社會), 즉 중산층 수준의 마을로 발전시킨다는 사업이다. 거점별 성공마을을 만들어(점) 이를 연결해서(선) 전체 농촌 지역으로 확대한다(면)는 전형적인 지역개발 실행모델이다.

최근 이 문건의 특징 중 하나는 ‘향촌진흥(鄕村振興)’의 등장이다. 향촌진흥은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 대회에서 보고됐고 이듬해인 2018년 <중앙 1호 문건>에 처음 등장했다. 그 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향촌진흥’은 4년 연속 <중앙 1호 문건>의 핵심 주제가 되고 있다. 이 문건에서 나오는 ‘鄕村振興’을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진흥’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내용적으로 보면 향촌진흥이나 농촌진흥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시진핑은 ‘농촌진흥’이라고 하지 않고 ‘향촌진흥’이라는 말을 고집하는 것일까? 특히나 정책용어로써는 향촌진흥보다는 농촌진흥이 더 적합해 보인다. 더욱이 ‘향촌’이라는 용어는 ‘과거’와 ‘저발전’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정책용어로써는 부적합해 보인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부는 집권 2기인 2018년에 향촌진흥전략을 제시하고 집권 3기의 시작인 올해에는 자신의 정책브랜드인 ‘천만공정’을 ‘향촌진흥’의 핵심전략으로 띄웠다. 왜 그럴까?

필자는 시진핑의 ‘향촌진흥’은 중국의 1920~193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된 향촌건설운동에서 가져왔다고 판단한다. 중국은 19세기 초 1·2차에 걸친 아편전쟁과 그 후 지속되는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구체제가 무너지고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새로운 국가가 들어섰지만 서구 열강과 일제의 계속되는 침략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 전쟁의 참화와 혼란 속에 중국을 다시 개조하고 부흥시키기 위해 량수밍, 옌양추, 루줘푸 등 지식인을 중심으로 시작한 운동이 향촌건설운동이었다. 외세에 맞서고 중국 인민들을 계몽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이 운동은 1920년대에 상하이·베이징·난징·광저우·허베이·산둥 등 중국 전역에서 전개됐다. 주로 농민교육을 통해 새로운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농촌환경을 개선했다. 베이징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량수밍은 <향촌건설이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중국 향촌발전을 위한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일제의 대대적인 침략과 국공내전의 격화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시진핑의 ‘향촌진흥’에는 중국 농업·농촌·농민이 지난 100년간 겪어왔던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끊어내고 향촌건설운동 추진 100년을 맞는 시기에 다시 ‘향촌진흥’을 국가 대업으로 삼아,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중등국가 수준으로 중국을 끌어올리는 데 그 핵심 대상을 삼농에 두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다른 것을 떠나 삼농문제에서만큼은 진심인 시진핑의 중국을 우리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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