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 출사표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8:51
  • 기자명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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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며 본격 행보를 하고 있다. 그 많은 후보 중 농민의 호소에 제대로 응답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문득 34년 전 한 농민이 밝힌 심정이 떠오른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호소다.

“우리가 무지하거나 게을러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우리 주변에는 남달리 부지런히 일하여 전답을 사고, 새집을 짓는가 하면, 돈을 얼마만큼 저축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그런 그들은 무지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아서 그런가. 사실, 우리 농민들 대부분은 그렇게 무지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그렇다면 우리 농민들을 오늘에까지 몰아놓은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대답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한마디로 말해 농민을 천시하는 정치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정치가들은 그 세력의 뿌리가 바로 농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있는 자(거대 토지소유자, 재벌 및 일부 부유계층)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옹호하면서 농민을 위시한 근로대중의 삶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이맹구(69) 씨가 34년 전 지역신문에 낸 글이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신문에서 끄집어낸 글인데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절규하는 오늘날 농민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이게 과연 농민의 탓인가? 다시 묻는다.

짜인 각본처럼 선거 때면 나타나 서슴없이 ‘농민의 아들딸’이라며 농민의 자식임을 강조하고, 자신만이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적임자라고 외치면서 농민의 표심을 흔든다. 농민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공약도 쏟아낸다. 간도 쓸개도 다 내줄 듯하더니 당선이 되면 권력 놀음에 취해 농민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각본의 끝이 항상 그랬기에 이번 총선도 농민의 처지에서 보면 감동 없이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지난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직업별 통계에서 농민의 수는 ‘0’이었다.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의 미래를 가늠하는 정치 척도가 ‘1’도 없었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총선은 민주노동당 시절 FTA를 막기 위해 세 번에 걸쳐 80일간 단식하고 투쟁했던 강기갑 의원처럼 오직 농민을 위해 ‘농민 정치’를 할 사람이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국회로 간 농민 국회의원은 농업정책에 대한 남다른 대응으로 농민들에게 상당한 희망을 주지 않았던가?

농민이 국회에 입성하면 뭐가 달라질까? 농민의 소득 보장에 큰 도움을 준 밭농업직불제와 쌀소득보전법은 강기갑 의원이 강력하게 주장해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친환경농업 직불제 도입의 실마리가 된 친환경농업육성법 개정안, 현실적인 재해피해 보상이 이뤄지도록 한 농어업재해대책법 등 국회의원 8년 동안 농민의 대변자로 농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아스팔트 위에서 농민의 아픔과 함께했다. 이렇듯 농민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농민 국회의원의 존재는 중요하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농업위기 등 다중위기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땅의 사람들 처지를 정확히 알고 마음을 다하는 정치를 위해 출사표를 던진 진짜 농민을 눈여겨보자. 진짜 농민의 출사표에는 그 어떤 거짓도 없고 오직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기 위해, 무차별 농축산물 수입개방을 막아내기 위해, 농민생존권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 진심을 다 담았을 거다.

진짜 농민의 국회 입성을 간절히 바라면서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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