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나는 시골병원 이사장이다

  • 입력 2024.03.10 18:00
  • 수정 2024.03.10 18:29
  • 기자명 금창영(충남 홍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창영(충남 홍성)
금창영(충남 홍성)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

시골 마을에 살다 보니 농사 이외에 다른 일도 조금씩 한다. 그중에는 동네 병원의 이사장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이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딸 : 아빠! 아빠가 동네 병원 이사장이라며?

아빠 : 응, 이사장이지.

딸 : 우와, 아빠 대단한데. 그럼 거기서 돈 얼마나 받아?

아빠 : 돈? 안받는데. 도시의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약간의 활동비를 받는가 몰라도 우리는 안 줘. 오히려 내 돈 쓰면서 다니는데.

딸 : 뭐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병원 대표가 돈을 쓰면서 다녀?

아빠 : 글쎄, 아빠는 마을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딸 :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

처음부터 수지를 맞춘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3,400여명이 사는 시골 마을에 반 이상이 노인이고, 이들의 대부분은 변변한 이동수단도 없다. 병원을 개원한 것이 9년이 넘었지만 의사나 간호사, 물리치료사 모두 법정 최저임금 언저리의 급여를 받는다. 이들이라고 어찌 언론에서 떠드는 연봉 3억~4억원의 의사 이야기가 들리지 않겠는가?

불법이긴 하지만

그 덕에 버티고 있어요

어느 날 남쪽의 어느 섬에서 연락이 왔다. 2,300여명이 사는 섬에는 당연히 병원이 없다. 섬에 사는 사람들도 아프다. 그들의 처지나 마음을 이해하는 좋은 의사 선생님을 갖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이동시간만 6시간이 걸리는 섬에 가게 됐다. 아프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병원을 가야 하면 하루 몇 번 다니지 않는 배를 타야 하니 종일이 걸리는 건 당연하고, 육지에서 하룻밤을 자야 할 수도 있단다.

섬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길가에 서 있는 승용차를 가리키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승용차의 운전자는 전직 간호사란다. 요청이 있으면 방문하여 수액도 놓고, 주사도 놓는단다. 별 생각 없이 “그건 불법행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죠. 불법이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 덕에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그 섬과 육지를 운항하는 배에서 정말 눈물겨운 장면을 보았다. 승객실로 이동하는 좁은 철제통로를 한 할머니가 네발로 기어가고 있었다.

저도 잘 압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이렇다 할 정부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어느 날 의료조합 사무국장이 정부사업보조금을 신청했는데, 이사장이 출석하여 이야기해야 한다는 부탁을 했다. 이사장으로서 그거라도 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지원금을 신청하시는 것도 좋지만, 자체적으로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주세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생님은 우리가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지금의 우리 방식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 병원에 가본 적이 있고, 어떤 곳인지 잘 압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어떻게 잘 아십니까? 이사장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심사에서는 떨어졌다. 사무국장에겐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부지원금을 받으려면 그저 고맙다는 말과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 같이하는 의사는 9년 동안 제대로 된 휴가도 가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만약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우리 병원에도 새로운 의사를 모실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만 드는 것일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