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배고픈 날이면 산으로 갔다④ 보리수 열매는 씨를 가려내고 먹을 것!

  • 입력 2024.03.10 18:00
  • 수정 2024.03.10 18:2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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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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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는 열매라고 해서 어느 지방에나 다 있는 것은 아니다. 강진 출신의 장귀례 할머니가 구수한 남녘 사투리에 버무려서 설명하는 이 열매는 어떤 것인지 들어보자.

“산에서 볼개를 따갖고 오는디 많이 따면 바구리가 반절은 차게 따제. 동네 사람들이 바구리 들여다보고 자꼬 주래싸면 아까라 안 하고 한 주먹씩 나눠줘. 집에 오면 온 식구가 둘러앙저서 한 볼태기씩 묵는디, 씨는 따로 볼카내야 돼. 씨까지 다 묵으면 낭중에 똥이 안 나와. 씨는 따로 모태놨다가 삶어서 몰례 갖고 까묵으면 고소해서 묵을만해.”

할머니가 얘기한 ‘볼개’는 보리수나무 열매를 말한다. 보리수나무는 주로 남녘 산지에 군락을 이루고 자생한다. 대추보다는 좀 작은 타원형의 이 열매는 6월이 되면 빨갛게 익는다.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보리수 열매를 바구니 가득 따가지고 와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다는 얘기다. 다른 식구들보다 많이 먹을 욕심에 씨를 가려내지 않고 한꺼번에 마구 삼켰다가는, 나중에 변소에 가서 볼일을 볼 때 애를 먹게 된다는 설명이다. 뱉어낸 씨는 삶아서 말렸다가 까먹으면 그 맛이 제법 고소했다고….

그렇다면 다음 얘기에 나오는 열매는 또 어떤 것일까?

“맹감나무라고 있어. 음력 4월쯤 되면 시퍼렇던 열매가 뻘겋게 익는디, 따묵어보면 맛이 달달해. 아그들은 원체 배가 고픙께 익을 때까장 못 지달려. 그란디 풋것은 맛이 영 떫고 시단 말여. 그랑께 고놈 한 볼태기를 입에 옇고 씹을 때, 집에서 미리 갖고 온 사카린 멫 알갱이를 같이 머금고 씹으면 그래도 묵을 만해. 아이고,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나네.”

도회지 사람들이 인절미를 만들 때 들러붙지 않도록 동그란 나뭇잎으로 감싸는데 그 나뭇잎이 망개나무 잎이고, 이 할머니가 얘기하는 ‘맹감’은 망개나무 열매다. 텁텁한 망개나무의 풋열매를 사카린과 함께 입안 가득 넣고 씹어 먹었다는데…지독스럽게 궁핍했던 시절의 얘기다.

-정님아, 이제 고만 따고 내려가자!

-엄마, 나 참꽃 많이 땄지?

-어디 보자. 어이구, 많이 땄구나. 그런데 입술이며 얼굴에다 아예 연지곤지를 발랐구나.

-히히. 참꽃 먹어서 그래.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나 요것아!

-그런데 이 꽃 따다가 뭐 하려구?

-화전도 부치고, 술도 담그고….

-엄마, 나중에 창호지로 방문 바를 때, 이 꽃잎을 가운데다 딱 넣고 바르자. 순임이네는 그렇게 해놨는데 되게 이쁘더라.

따 먹을 수 있는 꽃이 아카시아꽃만은 아니었다. 봄이 되면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꽃은 즉석에서 따먹기도 하지만 술을 담그거나 화전을 부치는 등, 식용으로 이용했던 역사가 오래된 꽃이다.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했고, 못 먹는 것으로 알려진 철쭉은 ‘개꽃’이라고 불렀다.

봄철엔 식량 말고도 땔감도 귀했다. 그래서 남정네들은 산에서 풋나무를 해다 말려서 땔감으로 썼다. 봄에 풋나무를 때고 남은 재는 잘 모아뒀다가 세탁용 잿물로도 사용했다.

“남자들은 진달래 꽃잎 따먹거나 그런 건 안 했어요. 대신에 진달래 등걸을 파서 바지게로 가득 져다가, 말려서 땔감으로 썼지요. 강원도에서는 그 등걸 나무를 ‘고자박’이라고 했어요. 진달래 나무는 뿌리가 깊지 않아서 괭이로 잔뿌리 몇 개만 잘라내면 쑥 뽑히거든요. 고놈을 바지게에 가득 채워서 짊어져 봐야 무겁지 않아요. 가뿐해요.”

이청길 교사의 얘기다. 그래서 봄철에 나뭇짐을 짊어지고 산길을 내려오는 남자들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지게에 온통 진달래 꽃송이가 붉게 어우러져서 하늘하늘 춤을 췄다.

‘작은 꽃동산’을 등에 지고 언덕을 내려오면서는 도라지타령이라도 흥얼거려야 제격이다. 거기에 지게 목발 장단이라도 어우러지면, 나물 캐러 가는 처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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