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 한살림의 과제, ‘농민 생산기반을 지켜라’

  • 입력 2024.03.10 12:50
  • 수정 2024.03.12 12:1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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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10월 18일 충북 괴산군 소수면 한살림 우리씨앗농장을 찾은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들이 안상희 농장 대표와 간담회를 마친 뒤 추수를 앞둔 가위찰벼(토종벼) 논을 둘러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0월 18일 충북 괴산군 소수면 한살림 우리씨앗농장을 찾은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들이 안상희 농장 대표와 간담회를 마친 뒤 추수를 앞둔 가위찰벼(토종벼) 논을 둘러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후위기 속에서 생활협동조합(생협)과 관계 맺은 친환경농민들의 생산기반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생협 생산자-소비자 간 관계 약화 속에서 과거 대비 소비자들의 ‘책임소비’, 즉 생협 생산자가 만든 농산물을 ‘농민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마음으로 구매하던 경향도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한살림연합(상임대표 권옥자, 한살림)은 40년 가까이 진행한 농업살림운동, 즉 생명농업의 기반을 ‘생소하나(생산자와 소비자는 하나)’의 관점에서 지켜온 운동의 새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한살림 생산자·조합원·실무자들은 2022년 6월 ‘농업살림특별위원회(농특위)’를 구성한 이래, 농업살림 방안을 오늘날 실정에 맞게 재구성하고자 논의해 왔다.

한살림은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청 공연장에서 ‘2024 한살림 농업살림 정책포럼’을 열었다. 이날 한살림 농특위가 내놓은 위기 대응방안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어떤 의견이 오갔을까?

‘쌀 책임소비’로 공급 약정량 6,790톤 지키자

한살림은 최근 농업살림을 어렵게 만드는 내외 요인으로 △생산비 폭등 및 기후변화에 따른 친환경농민의 생산 불안정성 심화 △소득 감소, 핵가족화, 외식 증가 등에 따른 소비 정체(특히 1차 농산물 소비 격감) △생산자-소비자 간 관계 약화 등을 꼽았다.

특히 한국 농업의 핵심 요소인 ‘쌀’의 생산기반 약화, 소비감소 문제는 한살림의 고민이기도 하다. 한살림의 2022년산 쌀 이용량은 조합원 식생활 변화 등의 요인이 겹쳐 전년 대비 14.08% 감소했고, 적체된 쌀 602톤의 외부 출하 등에 소요된 비용은 8억원에 달했다. 한살림은 이러한 상황을 겪으며 2022년 6,790톤이었던 쌀(멥쌀) 공급 약정량을 지난해 5,700톤으로 줄였다.

기후위기 심화로 농민들이 겪는 피해도 커졌다. 냉·동해 발생과 그로 인한 농산물 수확 지연, 품위 저하는 일상이 됐다. 지난해 7월의 기록적 폭우는 청주·괴산·부여 등지의 한살림 생산자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이에 한살림 농특위는 △식량작물 생산기반 유지 △생명농업 생산기반 유지 △농민·농지의 유지 △한살림 농업살림운동 확산을 위한 대사회 캠페인 등 4대 과제를 설정하고 각 과제별 실행방안을 세웠다. 포럼에선 곽현용 한살림 전무이사가 지난해 논의 결과를 토대로 마련한 4대 과제 내용을 발표했다.

우선 식량작물 생산기반 유지 방안으론 쌀 생산기반 유지 및 쌀 이외 타 작물(콩·밀·잡곡 등) 재배 확대 방안이 마련됐다. 특히 기존 쌀 공급 약정량 6,790톤을 지켜내기 위해, 한살림은 소비 영역에서 6,000톤, 생산 영역에서 790톤을 책임소비하는 세부 실행방안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론 현재 보통등급인 한살림 쌀 등급을 상등급으로 전환함으로써 완전미 비중을 늘리는 등의 미질 향상 노력, 지역생협별 쌀 판매 현황 관리를 통한 조합원 책임소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쌀 등급의 상등급 전환 시 기존 대비 약 8~10% 가격이 상승하리라 예상되는데, 등급 상향으로 소비자 가격이 상승할 시 쌀 이용 확대가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2024년산 쌀 수매가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게 한살림 농특위의 입장이다.

쌀 이외 타 작물 전환 확대와 관련해, 농특위는 한살림 ‘자체 직불금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타 작물 전환 농가의 안정적 생활 보장을 위해 평당 1,000원을 3년간 지급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농특위는 이와 함께 타 작물을 활용한 가공품 생산 방안, 예컨대 논콩을 한살림 두유 원료로 활용하는 등의 방법도 모색 중이다.

생산기준 조정, 청년 생산자 지원 강화 필요성 제시

지난 4일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2024 한살림 농업살림 정책포럼' 중 곽현용 한살림연합 전무이사가 한살림 농업살림특별위원회 차원에서 준비한 농업살림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4일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2024 한살림 농업살림 정책포럼' 중 곽현용 한살림연합 전무이사가 한살림 농업살림특별위원회 차원에서 준비한 농업살림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생명농업 생산기반 유지방안으로선, 현 기후 상황에 맞춘 생산기준 조정 내용이 대거 담겼다. 농작물 냉·동해 방지를 위해, 농특위는 우선 봄 작기 토마토류·오이류에 한해 생육 안정화 목적의 보온 조치가 가능하도록 허용할 것과 향후 수박 등 기타 과채류의 보온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지 과수 재배 과정의 생산기준 조정 제안도 눈에 띈다. 우선 봄철 개화기의 이상 저온에 따른 노지 과수 피해를 방지코자, 농특위는 기존엔 허용하지 않았던 ‘노지 과수 재배 시 열풍 방상팬 사용’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과수 대상 참여인증(한살림의 농산물 자주인증)체계의 방제 기준 현실화 내용(기존 ‘횟수방제’의 ‘적기적정 방제’로의 전환, 연속 방제 횟수 조정 등)도 담겼다.

그밖에도 생명농업 생산기반 유지방안으로선 △생산자-소비자 협동 ‘재난비상대책위원회’ 운영 △생산지 기후재난 대응 매뉴얼 마련 △기후변화 및 약정 이행률에 따른 생산계획 조정, 산지 재배치 작업 △기후변화에 따른 작물 영향평가 △농가소득 감소 방지를 위한 적극적 가격정책 검토 등이 제안됐다.

농민·농지의 유지방안으로서 특히 강조된 건 ‘청년 생산자의 생활 및 생산 활동 지원’ 방안이었는데, 그 예시로서 농특위는 △40세 미만 청년 생산자 기본소득 지급 △영농자금 확보를 위한 청년 월급제 실시 △생소협동(생산자·소비자 협동)형 ‘청년 생산자-지역생협 자매결연’ 구축 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한살림의 핵심 생산기반인 유기농지를 지키기 위해, 시범적으로 강원도 지역에 공유농지를 확보해 거점농장을 마련하자는 방안도 제기됐다.

농특위는 또한 대사회 캠페인 활동으론 △농산물 가격보장 위한 「양곡관리법」 및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 활동 △공익직불제 개선 촉구 △친환경농가 상황에 맞는 농작물 재해보험 설계 촉구 △범(凡)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강화 등의 활동을 제안했다.

“농지규제 완화 맞서 범(凡)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필요”

지난 4일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2024 한살림 농업살림 정책포럼' 중 참석자들이 한살림의 농업살림 방안과 관련해 토론하고 있다.
지난 4일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2024 한살림 농업살림 정책포럼' 중 참석자들이 한살림의 농업살림 방안과 관련해 토론하고 있다.

곽현용 전무이사의 농업살림 방안 발제 뒤, 이와 관련한 한살림 생산자·소비자 및 외부 전문가의 토론이 진행됐다.

소비자 조합원으로서 토론에 참석한 한인숙 한살림남서울생협 이사장은 한살림의 물품 공급체계가 현행 ‘중앙집중형 물류체계’에서 ‘지역 생소협동형 물류체계’로의 전환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살림의 물류체계는 경기도 안성시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앙집중형 체계다.

한 이사장은 “서울 등 수도권 조합원의 물품 이용액 규모가 전체의 70%를 점하는 가운데 물류 또한 수도권 위주로 편제되는 상황”이라며 “수도권의 한살림 지역생협은 소비자조직의 성격을 띠며 만들어진 반면, 영·호남과 충청권, 강원권, 제주지역의 생협은 태생부터 자연스럽게 생산자조직이 결합한 형태로 시작했다. 따라서 로컬푸드(지역먹거리) 운동의 기조에 맞춰 중부권 이남의 자체적 지역물류체계를 세우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산기준 조정 제안과 관련해, 김경린 한살림고양파주생협 농산물위원장은 방제 기준 완화 등의 조치가 “생산자들로 하여금 자연과 깊이 교감하고 농법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오히려 줄이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표했다. 김 위원장은 보온 조치와 관련해선 생산지에서 “(보온 조치를 한) 시간대와 그 시점의 온도, 투입한 에너지량 등의 데이터와 (보온 조치로 에너지를 사용한 데 따른) 간략한 심경까지 기록하는 에너지일지 작성을 제안”했다.

근본적 농정 변혁을 위한 한살림의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생산자를 대표해 참석한 정효진 한살림부여생산자연합회 대표(충남 부여 참벗공동체 소속)는 “(타 작물 전환 등을 통해) 쌀 생산량을 줄인다고 해서 위험이 없어지는 것도, 쌀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쌀 문제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쌀 수입 등) 외부요인”이라며 TRQ(저율관세할당)에 따른 쌀 의무수입물량 문제를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부에 농정기조 변화를 제안하고, 한살림 차원의 거국적 농산물 가격안정 활동이 필요하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이다.

외부 전문가로 참석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유기농지 보전을 위한 한살림의 계획이 시의적절하다며, 이와 연동해 전국적인 농지보전을 위한 캠페인 및 연대 강화 활동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부소장은 “최근 정부가 농지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농지보전 가치에 공감하는 친환경농민단체뿐 아니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등 제 단체와의 연대하에 농지보전 가치 확산 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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