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배고픈 날이면 산으로 갔다③ “뱀딸기 따먹으면 머리 벗겨진다”

  • 입력 2024.03.03 18:00
  • 수정 2024.03.03 19:1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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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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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아이들이 나무를 하러 가거나 소를(소 풀을) 뜯기러 가서 이런저런 열매를 보이는 대로 따 먹지만, 일삼아 군것질거리를 찾아서 산에 들기도 했다. 그럴 땐 목표를 정하고 간다.

-나, 딸기 어디 많이 있는지 안다. 지난번에 형이랑 가서 딸기밭 맞춰놨거든. 나만 따라와.

오늘은 딸기가 목표다. 길수는 딸기밭을 점 찍어놨다고 했는데, 송남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어딜 가자고 그래. 딸기 여기도 많잖아. 봐, 여기도 저기도 온통 딸기밭인데?

-바보야 여기 있는 이것들은 다 뱀딸기야. 형이 그러는데, 뱀딸기 먹으면 죽는댔어.

-죽는다고? 지난번에 한 개 따먹어봤는데…나 아직 안 죽었는데?

“산에 자주 다니는 애들은 딸기 많이 열리는 데를 다 알아요. 그런데 어쩌다 따라온 애들은 뱀딸기도 먹는 줄 안다니까요. 글쎄요, 내가 생각하기에 독성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퍼진 소문인지 몰라도 애들은 그거 먹으면 죽는다고 했어요. 뱀딸기는 깊은 산속에는 없고 가령 무덤가 잔디밭이라든가 들길 언저리, 그중에서도 소가 똥 싸놓은 그런 데서 주로 서식하거든요.”

강원도 출신 이청길 교사가 들려준 소싯적 경험담이다.

뱀딸기는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못 먹는 딸기로 알려져 있다. 전라도 강진이 고향인 장귀례 할머니는 걸판진 남도 사투리에 버무려서 손가락을 꼽아가며 아예 딸기를 종류별로 설명한다.

“들일 오고 가다 보면 갬지딸이 아조 쌔고 쌨어. 그래도 그건 안 따묵어. 머리 벗어진다고들 했응께. 밭매러 가면 일 하기 전에 몬침 밭갓으로 가서 모딸부텀 따묵그등. 고놈보담 더 맛나는 놈이 참딸이여. 참딸은 달달해서 한참 따묵고 나면 훌쭉하든 배가 볼록 일어난당께.”

딸기를 전라도에서는 ‘딸’이라고 부르는데 뱀딸기를 ‘갬지딸’이라 하고, 덩굴딸기는 모내기할 무렵에 익는다 하여 ‘모딸’, 그리고 보통의 딸기를 ‘참딸’이라고 했다 한다. 뱀딸기의 경우 비가 오고 난 뒤면 붉은 거죽이 일부 벗겨져서 허연 색깔을 드러낸다. 그 때문에 그걸 따먹으면 머리가 벗겨진다고 믿었다는 이 할머니의 얘기가 흥미롭다.

어쨌든 뒷산에 올라간 아이들이 드디어 딸기가 무더기로 열려 있는 딸기밭에 당도했겠다,

-우와 많다. 이거는 독 없는 거 맞지?

-그래. 맞아. 야, 조금 있으면 해질 테니까, 우리 이거 얼른 따가지고 집에 가서 먹자.

-좋아. 그런데…난 아무것도 안 갖고 왔는데 어디다 담아가지? 넌 그릇 갖고 왔어?

-그릇이 어딨어. 그냥 이렇게 해서 여기다 담으면 되지 뭐.

당시의 아이들 옷에는 변변히 주머니도 달려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처럼 무더기로 열려 있는 딸기밭을 발견한 터에, 담을 용기가 없어서 못 가져가라는 법은 없다. 길수가 왼손으로 러닝셔츠의 끝자락을 척 감아올려 쥐더니, 오른손으로는 딸기를 따서 옴폭한 셔츠 자락에 담는다. 다시 이청길 교사의 얘기다.

“더러 나이든 누나들은 바구니나 양푼을 갖고 가서 딸기를 따다가 식구들하고 나눠 먹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내아이들이야, 산에 가서 뭘 하고 싸돌아다닐지 모르는데 그런 걸 갖고 다니나요. 실컷 따먹고 나면 동생 생각도 나고 해서, 딸기 담아갈 주머니를 만들어요. 러닝셔츠 끝단을 잡아 올려서 한 손으로 움켜잡으면 그럴듯한 주머니가 돼요. 거기다 주섬주섬 딸기를 따서 담지요. 그런 다음에 그대로 움켜쥐고 집으로 향하는데, 한참 달려오다 보면 딸기가 짓물러서 뻘건 물이 셔츠 밖으로 배어 나와 배꼽으로 막 흐르고….”

뭉개졌든 말았든 집에 가져가면 동생들이야 맛나게 먹었지만, 어머니로부터는 지청구깨나 들었다. 딸기 물이 밴 셔츠는 아무리 빨아도 얼룩이 지지 않아서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사내아이는 또 딸기 따 먹는 꿈을 꾼다.

시골 아이들의 봄철 군것질거리였던 딸기는 시설재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농가의 주요작목이 되었다. 크기도 무려 아기들 주먹만큼이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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