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현장에서 느낀 몇 가지 생각

“농민회가 왜 이러지?”

  • 입력 2009.03.02 08:31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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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개혁 문제로 전국농민대회가 있어서 서울에 갔던 날, 회원 한 사람이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사이인 그가 내뱉는 자탄의 소리가 오래도록 귓가를 떠나지 않고 여운을 남겼습니다.

농민회가 왜 이러지? 그날, 농협개혁을 외치는 전농 회원들 숫자가 너무 적어서 집회 장소가 썰렁하기만 한 까닭에 나온 자조적인 말입니다. 물론 전농이 이번 대회에서 굳이 많은 인원을 동원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고 또 그럴 이유도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역전의 용사’는 못내 그것이 가슴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농민회는 조직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어서 거의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야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개입을 했겠지만, 이 자리에서 굳이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농이 이 문제를 너무 오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우려는 혼자만의 기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회의 과정이나 결과보다도 저는 그날 정말이지 오랜만에 기쁨에 들떠서 적조했던 몇 사람과 터무니없이 큰소리로 육두문자도 내뱉으며 너나들이로 보낸 모처럼의 하루였습니다. 몇 년만에 이웃 경산농민회 ‘역전의 용사’들과 같은 버스를 탔고 그것이 너무 반가워 억지로 술잔을 권하면서 지난날들을 반추하는 일은 꽤나 재미가 있었습니다.

전혀 뜻하지 않게도 이웃 경산농민회와 같은 버스를 타게 된 것은 칠곡휴게소에서였습니다. 우리 버스가 막 휴게소에 닿았을 때, 승용차 세 대로 올라가던 경산농민회 회원들을 만났고 몇 마디 얘기 끝에 그들은 승용차를 버리고 우리 버스에 합류를 했지요. 사십오 인석 버스 좌석은 열여덟 개나 비어 있었으니 썩 훌륭한 판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이야 많이 소원해진 편이지만 오래 전 경산농민회와 영천농민회는 몇 년에 걸쳐 버스 한 대로 같이 서울 투쟁에 다녀오곤 했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때로는 영천이 경산농민회 버스에 얹혀간 적도 있었고 또 때로는 그와 반대의 경우도 있었던 인연으로 두 농민회는 상당히 끈끈한 애정(?)의 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큰집’이니 ‘작은집’이니 우기기도 많이 했었지요.

 한때는 서로의 지역대회에서 머릿수를 채워주기 위해 떼거리로 몰려가서 도와주기도 했으니 가시버시마냥 도타운 정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정말이지 쟁쟁했던 ‘역전의 용사’ 몇몇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저거야, 농민회는 배워야 돼!”
국회 앞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농협중앙회로 가기 위해 이동하던 중에 언론노조의 집회를 바라보던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질서정연하게 앉아 무대를 향해 집중하고 있는 언론노조의 대오는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을 보는 것 같았지요.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참 멋대가리 없네! 그렇게 이죽거렸을 뿐입니다. 사실 농민집회문화는 그동안 말이 좀 많았던 편이지요. 여느 집단의 집회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때로는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라고도 합니다. 무대 맨 앞쪽의 어느 정도만 집중을 하고 뒤편으로 가면 한 무리씩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는 풍경은 가히 절경입니다.

이 풍경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동북아시아의 극동 한반도 남쪽 농사꾼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입니다. 그 자리에서 둘러앉아 난장으로 술 마시면서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는 농투성이들은 가히 인간문화재감입니다. 그들은 모처럼 논밭에서 나와 아는 얼굴들을 만났으나 나누는 이야기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농사 때문에 화가 치솟으니 술로 그 울분을 달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울분을 삭히기 위해 마신 술은 그러나 신명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유장하게 이어져 오는 농경문화이지요. 그런 힘으로 조선 망하듯 망해 가는 농업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나라 농업/농촌의 보루이면서 미래입니다. 노동으로 찌든 얼굴의 주름에서 모처럼 피어나는 신명을 윽박질러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지금 간신히, 술 힘으로 버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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