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 입력 2024.02.25 18:00
  • 수정 2024.02.25 18:14
  • 기자명 김현지(전남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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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전남 곡성)
김현지(전남 곡성)

어릴 적 경주에서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하며 첨성대 근처에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서 본 아이들의 쥐불은 둥근 원을 그리며 쉼 없이 돌아가는데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집도 쥐불놀이도 사라진 도시의 정월 대보름은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그저 그런 날이 되어 버렸다.

음력 새해의 첫 보름인 대보름은 <삼국유사> 기이 제1편에 신라 21대 소지왕(재위 479~500년)의 ‘사금갑’이라는 전설에서 임금을 구해준 까마귀에게 해마다 찰밥을 준 것에서 유래됐다고 적혀있다. 임금을 구한 서찰이 나왔다고 해서 불리게 된 서출지는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며 지금도 배롱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전설이 아니라 사실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풍속들이 일제강점기를 지나 도시화가 되면서 많이 사라져 가는 게 너무도 아쉬웠다. 그런데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에 귀농하면서 커다란 달집과 쥐불놀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도 달집태우기를 한다니 정말 반가웠다. 알고 보니 곡성에서는 면마다 청년회가 주축이 돼 대보름날 크게 달집을 짓고 한 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고 가정마다의 행복과 건강을 빌며 신명 나게 풍물을 치며, 지신밟기를 하고 달집태우기를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이 모습에 홀딱 반해 해마다 대보름날이 되면 구경 오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농촌에서 사라지지 않은 풍속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데는 각 면마다 있는 풍물패가 한 몫을 하는데, 죽곡에는 `ᄒᆞᆫ소리 풍물패’가 있다. 우리 풍속에 풍물이 빠지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인 것이다. 귀농했을 때 풍물을 치고 싶어 알게 된 죽곡ᄒᆞᆫ소리 풍물패는 대보름을 위해 1년 동안 풍물 연습을 한다. 솜씨는 아마추어지만 신명만큼은 프로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대보름 전날에는 주로 마을에서 지신밟기를 하며 달집을 태우는데 죽곡면에서는 이제 내가 사는 삼태마을만이 유일하게 달집태우기를 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남자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대나무 등 여러 나무를 베어 달집을 만들고, 당일엔 여자 어르신들이 오곡밥과 나물을 준비한다. 밤, 잣, 땅콩 등 껍질이 단단한 과일인 부럼을 깨며 부스럼을 쫓고, 귀를 밝혀 주고 귓병을 없애 준다는 귀밝이술도 한 잔, 아니 여러 잔 한다.

예전에는 대보름날 연을 날리다가 끊어서 액을 쫓기도 했는데, 삼태마을에서는 연 만드는 장인이 있어 해마다 연을 만들어 날리기도 하고 달집에 붙여 태우기도 한다. 또한, 먼저 보는 사람에게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며 더위팔기도 했는데, 올해는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더없이 더운 여름이 될 것이기에 더위를 꼭 팔아야겠다.

달집을 만들며 소원지도 붙이고 모든 액운이 달집과 함께 사라지길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은 우리 토종씨앗을 지켜내듯 꼭 지켜내야 할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훨훨 타는 달집을 함께 돌며 한 해의 모든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은 새로운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만복은 이리로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대유전을 비옵니다. 어허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그렇게 우리 것을 지키며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마을 공동체는 면면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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