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없는 분노는 분노 없는 자비만 못합니다”

  • 입력 2024.02.25 18:00
  • 수정 2024.02.25 18:14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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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넷이 눈을 부라리면 위축될 일이지만 스님은 기색이 없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얼마 전부터 서학에 관한 책자를 보고 있습니다. 어느 높은 곳에 모든 걸 주관하는 이가 있어 세상을 만들고 관장한다는데 어찌된 노릇일까요? 노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원리라 하고 더러는 태극을 말하지만 과연 저 광활한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는지 궁금합니다.”

“그걸 알면 그때로 가시렵니까?”

기범이의 질문은 도발에 가까웠고 젊은 나이에 강백이 되었다니 도전하고 싶었던 것이나 스님은 부드럽게 퉁겨냈다.

“우주도 우주려니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그를 모른단 말이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합궁하지 않았습니까?”

“하면 이 세상도 암수가 낳았겠구려. 서학에서는 천주가 모든 걸 창조했다는데 스님께선 암수를 거기 둘 작정입니다그려.”

“파도와 바다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담장 너머에 뿔이 보이면 소가 지나는 게지 봐야만 알겠소?”

화로의 주전자 꼭지에 김이 오르자 스님은 숙우에 붓고 주전자에 물을 채웠다.

“본래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엔 절도 없고 중도 없었답니다. 한 번은 짐승 같은 사내 몇이서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손에는 돌을 묶은 나무를 들었지요. 고라니라도 잡으면 좋으련만 온산을 뒤져도 소득은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 동굴에 누웠는데 배가 고파 잠이 와야지요. 소나무 속살을 벗겨 씹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옆에 있던 암컷이 눈에 들어왔던 겁니다. 교합이 이루어지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도 그런 일생을 살았겠지요. 그 아이가 실은 여기 처사님들의 조상쯤일 겝니다. 그렇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소나무는 우리와 관련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기범이의 질문에 스님은 연기(緣起)를 들어 답하는 중이었다. 필상이 끄덕였다.

“소나무가 저를 이루지요.”

“그 소나무는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백두산에 살던 곰이 솔방울을 먹고 예까지 와서 똥을 쌌는데 소나무가 나왔다더군요. 허면 그 곰은 보살님들의 할아버지뻘이 되겠습니다.”

필상은 이번에도 선선히 수긍하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누가 무엇을 만들고 그 무엇은 또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연이 닿아 생성되고 움직이고 변화하니 고정된 것은 없지요.”

다시 주전자의 물이 끓었다. 풍경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바람이 치는 모양이었다. 숙우의 물로 차를 우리고 끓는 물을 숙우에 따른 스님이 주전자에 물을 채웠다. 필상은 부푼 창호지가 자리로 돌아가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푹해도 겨울입니다. 우리가 객인데 주인께서 한 데 계시니 불편합니다.”

사람들이 창호지에 비친 처자의 그림자를 보았다.

“유학을 하시는지라 내외가 중할 터인데 말씀이 반갑습니다.”

경허의 말이 끝나자 희옥이가 털고 나가 처자를 데려왔다. 여인은 좌중을 돌아 스님의 주장자를 물리며 한 무릎을 세우고 앉는데 행동거지에 거침이 없었다. 송씨네의 내력대로 키가 훤칠하여 무릎에 얹은 손가락도 맹금처럼 길었다.

“스님께서는 세상만사 연기하여 이루어진다 하셨는데 산문 밖의 저 아비규환은 어찌 하오리까? 그 또한 인연의 고리를 따라 발생하고 사라질 일이므로 각자의 평정만 찾으면 되겠습니까?”

조용하여 의식 못하다가 뜻밖의 질문을 받고 스님이 병호를 보았다. 들에 나간 새떼가 돌아오는지 날개 젖는 푸르르 소리가 들렸다.

“제가 어떤 말을 남겨도 처사께선 답을 얻지 못할 겝니다. 허나 한 가지 말씀은 드려보지요. 어느 해 여름에 한 스님이 사미승과 탁발을 나갔습니다. 비로 불어난 냇물을 만났는데 뒤에서 어떤 여인이 업어 건네면 삯을 주겠다 하였습니다. 마침내 개울을 건넌 여인이 삯을 내밀자 스님은 다른 걸 받겠다며 손으로 엉덩이를 갈겼습니다. 모든 걸 삯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못마땅했지요. 그날 밤 사미승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스님의 행위가 계율을 어긴 건 아닌지, 음심이 발동했는지 의문이 생겼으니까요. 개울을 건넌 지 오래건만 그 사미승은 여인을 업고 있었던 겝니다.”

“강을 건너거든 뗏목을 버리라시는군요. 저 아비규환은 눈에 보이는 것이니 색(色)이요, 변화하고 사라질 것이므로 공(空)이라고도 한다지요. 개인을 위무하기에 그보다 약이 되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고(苦)가 아닌 세상의 고는 어찌합니까? 개인의 고를 내려놓아도 상여 줄 같아서 다른 사람은 세상의 고를 메고 있겠지요.”

경허는 숙연하게 앉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태도는 아까보다 진중하였다.

“불교는 개인을 염두에 둔 학문입니다. 불교가 만들어진 천축 땅이 사철 풍성해서 떼 뭉쳐 할 일이 없었다는군요. 하지만 조선에 들어오기까지 결국 그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그리하여 피안에 이를 더 큰 배를 만들고자 애를 썼지요. 서산대사나 영규대사가 국난을 당하매 힘을 모은 것도 그 뜻은 아닐런지요.”

“저는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유학이 복종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불학은 체념을 말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스님은 더 이상 차를 우리지 않았다. 필상이 대신 다관에 물을 채웠다.

“뼈를 찔린 것 같습니다. 어느 마을을 지나면서 보니 기근에 토색질이 겹쳐 향민들이 황달을 앓더이다. 그때 할 일이 경을 외우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불가에선 중생의 마음을 살피고 짐을 덜어 피안에 이르길 권하되 기예(技藝)와 법술(法術)엔 뜻이 적다 하겠지요. 그렇다고 무용하다 할 순 없습니다. 처사님께서 무서운 말씀을 주셨으니 저도 묻고자 합니다. 뗏목을 짊어지지 않은 자 어찌 뗏목을 버리며, 고가 없는 자 어찌 해탈에 이르겠습니까? 꿈에 관하여 말하는 자는 꿈을 깬 잡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여기 계신 처사님들께선 진실로 세상의 고를 짊어지셨는지요?”

경허의 말에 기세 좋게 덤비던 병호는 끽소리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경허의 질문은 죽비소리처럼 들렸는데 과장을 뒤엎고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 하나 병호는 누릴 수 있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였고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저는 처사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맨날 자비를 말하는 불도 앞에서 분노 없는 자비가 무엇이냐 묻는 게지요. 저는 법문 속에서 일을 찾고 처사님들은 속세에서 찾아야겠지요. 처사님들께 당부드립니다. 자비 없는 분노는 분노 없는 자비만 못합니다.”

말을 마친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처자가 따라나섰다.

“스님, 스님!”

방안의 사람들은 눈만 멀뚱거리는데 병호가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덩달아 일어서려던 희옥이를 필상이 붙들어 앉혔다.

“아따, 저노무 스님, 입만 큰 게 아니라 말도 걸구려.”

기범이가 중얼거리는 사이 필상은 경허와 병호로부터 떨어져 선 처자를 보았다. 심각한 말이 오갈 적에도 담론보다는 처자의 모습에 눈이 갔었다. 여인네 엉덩이를 친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필상이 눈여겨본 점이 그런 것이었다.

“저 처자 말일세.”

희옥이가 필상을 보았다.

“병호 아우의 배필로 어떤가?”

희옥이의 눈동자가 처자에게로 옮겨갔다.

“내조를 잘 할지…… 난 모르겠구려.”

“내조가 필요한 게 아니네.”

“그럼 뭣이 중하우?”

“감당할 사람이 필요하지.”

그 말에 기범이가 낄낄거렸다.

“저 중놈이 우릴 앉혀놓고 싸대기 쳐댄 걸 보슈. 동생이라잖소.”

그들이 농 반 진 반으로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할 때 병호가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밖에서까지 나누나 그래?”

“또 뵐 수 있냐 물었더니 보고 말 게 뭐 있냐 그럽디다. 인연이 됐다고.”

기범이가 다시 낄낄댔다.

“성님도 차암, 아 스님을 보러 갔겠소? 처자 얼굴을 보려던 게지.”

절간에 더는 머물 이유가 없게 되어 일행은 밖으로 나섰다. 키들이 커서 발도 빠른지 한참을 걸었지만 남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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