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석열 대통령의 ‘입틀막’

  • 입력 2024.02.25 18:00
  • 수정 2024.02.26 13:5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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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입틀막은 ‘입을 틀어막다’를 줄인 말이다. 요새 온라인엔 ‘입틀막’이 들어간 뉴스 헤드라인이 가득하다. 최근 가장 ‘핫한’ 단어. 지난 16일 카이스트 졸업식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하라”라고 외친 순간 대통령 경호처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은 뒤 사지를 들고 밖으로 끌고 나간 사건 때문이다.

그러든 말든 이날 윤 대통령은 졸업생들에게 “마음껏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정부가 힘껏 지원하겠다”라고 축사를 건넸다. 역대 정권 최초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해 놓고선 뭘 지원하겠다는 건가. 말과 행동의 극단적 불일치에 헛웃음만 나온다.

투명종이에 대고 그린 듯 장면이 겹친다. 지난달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장에서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진다”라고 말해 똑같은 모습으로 행사장 밖으로 내쳐진 강성희 진보당 의원. 강 의원뿐 아니라 그를 뽑은 국민의 명예가 울타리 밖으로 던져졌다.

입틀막은 표준국어대사전 상 정식 단어는 아니지만,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사용자가 참여해 만드는 우리말 사전)을 보면 ‘놀라서 벌어진 입을 막을 정도로 벅차오를 때’ 쓰는 말이다. 벅차오를 만큼 크게 기쁘거나 감동할 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입을 막는다는 것이겠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 경호처의 행태를 보면 조만간 뜻이 새롭게 추가돼야 할 것 같다. 대략 ‘내용이 옳거나 그른지 상관없이 상대방이 하는 말이 듣기 거북하고 불쾌할 때 즉각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는다’ 정도쯤 되려나.

이 일련의 사태가 단지 ‘과잉 경호’의 문제를 넘어서는 건 정부 입장과 다른 의견은 듣지도 않을뿐더러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압박이자 위협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잦은 거부권 행사, 전방위적 압수수색, 야권과의 소통 방임 등도 사실상 또 하나의 입틀막이다.

정치의 근본 목적은 서로 다름을 충분히 조율해 모두가 고루 편익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열린 태도로 경청·소통해 화합을 이루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본분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선 이러한 정치와 지도자가 없다.

대통령 심기에 거슬리면 뭐든 가짜뉴스, 카르텔 집단, 국가전복 세력, 정치적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정권 아래서 국민의 심기도 몹시 불편하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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