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배고픈 날이면 산으로 갔다① 뽕나무 가지엔 가끔 고무신도 열렸다

  • 입력 2024.02.11 18:00
  • 수정 2024.02.11 18:4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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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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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의 어느 봄날, 서울 남산 들머리에 위치한 국민학교 교정에 끝 종이 울려 퍼진다. 6교시 수업이 파했다. 종례를 마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경상도에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사내아이가, 나란히 걷던 두 동무에게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한다.

-건용아, 재도야, 오늘 저어게 남산으로 아카시아꽃 따 무러 안 갈 끼가?

건용이와 재도가 얼굴을 마주 보며 한바탕 웃는다. 경부선 열차에서 막 내린 듯, 싱싱하게 굼틀거리는 전학생 아이의 사투리 억양이 재미나서 웃었으나, 그것만 우스운 것은 아니었다.

-뭐라고? 아카시아꽃을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고 따먹으러 가자고? 얘 되게 웃긴다.

-낼로 보고 웃긴다캤나. 너그들 아카시아꽃 한 번도 안 무 봤나? 그거 억수로 맛있는데.

꽃이란 눈으로 구경하는 관상의 대상인 것으로만 알았던 서울 아이들은, 남산으로 아카시아꽃을 따먹으러 가자는 시골 전학생의 제의에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일단 여차 보기로 따라나서기로 한다.

이윽고 아카시아 꽃길에 당도한 그 세 아이가 거기서 각각 어찌했을 것인지는 예상한 대로다. 지금(2003년)은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정건용씨는 말한다.

“남산을 무시로 올라다녔어도, 아카시아 꽃잎을 따먹는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경상도에서 온 그 전학생이 보란 듯이 꽃잎을 주루룩 훑어서 한 볼때기 입에 넣고는 으적으적 맛나게 먹는 거예요. 우리도 망설이다가 꽃잎을 두세 개 따서 씹어봤다가 아, 퉤, 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더니 아카시아 꽃잎도 그렇더라니까요, 하하하.”

하지만 서울 아이들이라고 산에서 군것질거리를 조달하지 말란 법이 있나. 남산 아래 필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역시 대학교수인 남재도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가끔은 산딸기도 따 먹고, 왜 벚나무 열매 있지요, 버찌. 그거 달콤하고 참 맛있거든요. 그거 따먹겠다고 남산 철조망을 타 넘다가 순경한테 들키면, 양쪽 귀때기를 잡혀 비틀리는 바람에 한바탕 혼쭐이 나지요. 그런데요, 우리 동네 어느 부잣집에 가면 버찌가 지천으로 열리는 벚나무가 있었어요. 저 어렸을 적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라는 이병철씨의 집이 필동 대한극장 뒤편에 있었어요. 그 집 벚나무 가지가 담 바깥으로 뻗어 나오거든요. 거기 열린 버찌를 따 먹겠다고 친구들하고 담장 위로 올라갔다가, 집안 마당에서 송아지 만한 개가 점프를 하는 바람에…어휴, 혼비백산했지요.”

이 두 서울내기 남자들이 산에 들어서, 혹은 나무에 올라가서 먹을 것을 구했던 소년 시절의 추억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하지만 그 또래 시골 출신 남자들의 소싯적 추억에 등장하는 군것질거리는, 그 품목(?)도 다양하거니와 그것들을 채취하는 방식도 매우 적극적이고 또한 부잡스러웠다. 강원도 출신 이남수씨의 추억을 따라가 보자.

“겨울철을 빼고는, 등하굣길에 만나는 나무나 혹은 숲속에는 뭐든 먹을거리가 있다구요. 봄이면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는데, 대체로 우리 손이 닿지 않은 높은 데에 피잖아요. 그럼 산에 들어가서 지겟작대기처럼 Y자로 생긴 나뭇가지를 구해와서 고놈으로 가지를 비틀어 꺾어서 따먹기도 하고…. 5월 말에서 6월 초가 되면 신나지요. 오디가 까맣게 익거든요.”

아이들은 책보나 가방을 길섶에 내려놓고 오디 채취에 나서는데, 문제는 저만치 높은 가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다들 저쪽으로 비켜봐. 내가 돌을 던질 테니까. 하나, 둘, 으이차!

-야, 돌멩이 그거 던져서 오디가 떨어지겠냐. 다들 신을 한 짝씩 벗어서 내가 시작, 하면 던지는 거야. 자, 시이작!

-아이고, 큰일 났다! 내 고무신짝이 뽕나무 가지에 걸려버렸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올라가서 신짝도 갖고 오고, 나뭇가지 꺾어서 오디도 따야지.

-내가 먼저 올라갈게.

한 녀석이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어 바르더니, 아름드리 뽕나무를 부둥켜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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