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업인 바우처를 신청하다

  • 입력 2024.02.11 18:00
  • 수정 2024.02.11 18:46
  • 기자명 신수미(강원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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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미(강원 원주)
신수미(강원 원주)

지난 1월 여성농업인 복지바우처와 노동경감 지원사업을 신청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2023년 1월 이전 농업경영체에 등록한 여성농업인이면 신청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작년에 농업경영체를 등록하고 나서 지원사업 책자를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봤다가 농업경영체 등록 후 1년이 지나야 신청이 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알고 실망한 적이 있다. 그렇게 기대하던 일이라서 올해는 지원사업 안내 책자를 찾아보기도 전에 여성농업인 바우처를 신청하라는 문자를 받으니 신이 났다. 아직 받지 못했지만, 이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좋았다. 20만원이라는 액수를 떠나 왠지 여성농민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누구에게 무엇을 인정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칭찬받는 것 같고 격려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농민수당을 처음 받았을 때 농민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민수당이 지급된 첫해에 후원금을 모금했었는데, 많은 회원들이 선뜻 받은 농민수당의 일부를 농민회 후원금으로 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농민회가 나서 직접 만든 정책으로 받는 수당이었기에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농민수당을 만들어낼 때 가장 앞장서서 활동했던 농민회 분들이 직접 수당을 받고 좋아하시던 모습도 기억났다. 나는 내년이 지나야 농민수당을 받을 수 있어 그분들이 부러웠지만 한편으론 함께 기분이 좋았다.

바우처 신청서를 작성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돈 받으면 뭐하지 생각하던 중에 먼저 바우처를 받았던 동생들이 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여성농업인 바우처가 지급된 초기에 많은 여성들이 자기에게 그 돈을 쓰기 보다는 남편 옷을 사준다며 속이 상한다는 얘기였다. 요즘은 바우처가 나오면 대부분 미용실로 가서 머리부터 하신다고 한다. 할매들이 미용실에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말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동이 불편한 그녀들을 위해 바우처 사용이 가능한 다른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도 생겨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농민수당이나 복지바우처 등의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돈을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인정받는 것, 그리고 그로인해 또 다른 일들이 이어져 단조로운 생활이 좀 더 재밌어지게 된다. 다른 여타의 정책에 비해 많지 않은 액수로 농민들이 보람을 느끼고 즐거울 수 있다니 좋은 일이 아닌가. 물론 앞으로 액수가 더 늘어나고 지급 대상도 확대돼야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작년에 충남에서 행복바우처를 폐지한 일도 떠올랐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고, 정책담당자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금액으로 앞서 말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을 왜 폐기하는 걸까. 그리고 삭감한 예산 대부분은 스마트팜 단지 조성으로 편성하고, 일부는 여성농업인 편의장비 보급과 해외연수 등에 편성했다고 한다. 이런 결정을 한 사람들에게 바우처나 수당은 의미가 다를 것이다. 선심성으로 주는 돈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 농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농민수당 운동을 벌였는지, 여성농민들이 당당한 주체로 인정받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바우처나 농민수당이 선심성으로 주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받았을 때 자랑스럽고 뿌듯한 감정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농민으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고, 농촌에서 여성농민의 역할과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대가이고, 앞으로 받는 사람도 의미도 더 커져야 한다.

한동안 반값농자재 지원금과 직불금을 신청하는 기간이라 다들 모이면 그 얘기들이 한창이었다. 직불금은 정부 정책이지만 반값농자재 지원 사업은 여성바우처처럼 행정에서 없애면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사업이다. 반값농자재도 농민수당처럼 농민회가 꾸준히 제기해서 공론화하고, 농자재값이 폭등한 해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되어 너도나도 공약으로 걸었고 이제 시행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충남 여성바우처 사례를 보고나니 반값농자재 지원사업은 필수농자재 지원법으로 만들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농민수당을 만들어낸 경험은 이렇게 조금씩 농민의 생각도 우리 사회도 바꿔 가는데 영향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 지원사업 책자를 펴 내가 신청할 수 있는 것들이 있나 살펴봤다. 올해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들기도 하고, 나도 이 대열에 끼어 뭔가 하나 신청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필요도 없고, 자부담이 다 있어서 오히려 내 돈을 더 쓰게 되는 건데도 뭔가 혜택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것도 농민이 되어가는 한 단계일까 아니면 혹시 이렇게 지원사업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같이 들어서 얼른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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