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교사의 열악한 노동환경 … 교육당국은 계속 방치할 텐가?

임용 4년 차 30대 영양교사의 죽음 … 동료들 “남일 같지 않다”
영양교사 혼자 민원 떠맡는 구조 및 인력 부족 문제 해결해야

  • 입력 2024.02.09 15:10
  • 수정 2024.02.11 18:5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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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시 양천구 모 중학교의 임용 4년 차 30대 영양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근무하던 중학교 정문에 각지의 영양교사들이 추모화환을 보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양천구 모 중학교의 임용 4년 차 30대 영양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근무하던 중학교 정문에 각지의 영양교사들이 추모화환을 보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양천구 모 중학교의 임용 4년 차 30대 영양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생전에 일부 학부모로부터 학교급식 관련 악성 민원에 시달려 왔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학교 영양교사들은 △영양교사 혼자 온전히 급식 민원을 떠맡는 구조의 개선 △인력 충원 등을 통한 영양교사 노동환경 개선 대책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전희영, 전교조)은 지난 1일 발표한 애도 성명에서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나, 해당 선생님은 급식 관련 민원으로 고통받았던 정황이 드러난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구체적 증거가 없어 교권침해 사안으로 조사할 계획이 현재로선 없다’며 진상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서울시교육청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했다. 전교조는 “고인의 죽음에 단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진상규명과 책임 있는 조치, 재발 방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서울시교육청에 촉구했다.

서울시교육청 측은 이와 관련해 “사안 발생 뒤 교육청 본청과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학교 현장 상황 파악을 진행했다. 해당 교사는 1년 가량 병가를 냈다가 복귀를 앞두고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며 “현재까지 해당 학교와 교육지원청 차원의 장학은 이뤄졌는데, 설연휴 이후 다시금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고자 해당 학교 대상 장학계획을 본청과 지원청이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현장 영양교사들은 고인의 일이 남 일 같지 않다며 애통해 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재직 중인 30여년 경력 영양교사 S씨는 최근 후배 영양교사들과 함께 고인이 재직하던 학교에 추모화환을 보냈다.

S씨는 “다수의 학교 영양교사가 사실상 혼자서 학부모의 민원을 감내해야 한다. 제가 몸담은 학교처럼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이 급식 민원을 영양교사에게 일방적으로 맡기지 않고 함께 나서서 처리하는 곳도 있지만, 학교 관리자 중엔 영양교사가 알아서 민원을 처리하라는 식으로 맡기는 이들이 많다”며 “동료 영양교사 중에도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고통, 민원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 등을 토로하며 약물치료를 고려하던 이들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S씨는 또한 최근 학교급식 상황과 관련해, ‘교육으로서의 친환경 무상급식’이라는 원래 취지를 잃은 채 학생과 학부모의 기호에만 전적으로 영합하는 식의 ‘표류’가 계속됨을 지적했다. 친환경·근거리 급식으로서 학생의 건강과 영양을 책임지고 농민의 삶과 연계되는 급식을 교육당국 차원에서 책임져야 하건만, 오히려 일선 학교에선 랍스타·마라탕 등 학생 선호도에만 초점을 맞춘 메뉴를 제공하고, 그러한 학교를 교육청에서 ‘모범사례’마냥 언급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적지 않은 학부모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급식’을 요구한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급식을 맛없어 하면 일부 학부모는 “항의전화와 항의방문을 넘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S씨)”하기도 한다.

영양교사의 노동환경 자체도 열악하다. 경기도의 또 다른 영양교사 K씨는 “고인이 근무한 중학교는 급식 인원수가 1,400여명인 학생 과밀학교”라며 “신도시 또는 자식 교육 목적의 이주민이 대거 들어오는 동네의 학교는 필연적으로 학생 과밀문제가 불거진다. 그럼에도 영양교사 한 명이 1,400여명 학생의 급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하물며 고인은 경력 4년차의 저경력 교사였던 만큼 그 압박감이 훨씬 컸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K씨 또한 4년 전 경기도의 한 신도시 내 학교에서 근무했는데, 해당 학교도 학생 수가 1,300여명인 학생 과밀학교였다.

S씨가 근무하는 학교도 학생·직원 1,151명의 급식을 책임질 영양교사가 S씨 한 명뿐이다. 1,151명의 인원은 해당 학교의 시설·규모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인원의 160% 수준인 과밀 인원이다. 그러나 조리기구는 부족하고 사람은 많기에, 필연적으로 배식 및 식사시간이 지연되는 문제가 반복된다. 시설·기구의 확대 없이 업무량만 늘어나다 보니 지난해 2학기엔 조리원 신규발령자 2명이 퇴사해 대체인력을 구해야 한다.

참고로 학교보건법상엔 36학급 이상의 과밀학교는 2명 이상의 보건교사를 배치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영양교사 배치와 관련해선 학교급식법상의 규정이 없다. 이에 지난해 3월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엔, 36학급 이상 대규모 학교는 급식 학생 수가 평균(442명)의 두 배가 넘어(1,069명) 영양교사의 업무 과중이 심각한 만큼 영양교사를 추가 배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규정을 넣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여전히 국회 교육위원회에 계류된 채 오는 5월 말 22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전교조는 이와 관련해 “교사 개인에게 구조적 문제를 떠넘긴 것이라는 점에서 교육부와 국회의 책임도 무겁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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