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법을 시행함에 엄하게 하시오”

  • 입력 2024.02.04 18:15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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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을 넘어가자 나장들이 오라를 감고 둘을 동헌 마당에 끌어냈다. 동헌 마루 의자 위에 관복을 갖춘 현감이 앉아 있었으며 토방에는 서리들이 도열하고 마당 가운데엔 십자형틀이 갖춰져 있었다. 풍신은 좋지 않지만 현감은 수염이 가지런하고 앉은 자세가 곧았다. 한미한 고을에서 세월을 보내다 내직으로 올라가면 최선이지만 뇌물을 바친 어느 놈이 꿰차고 올지 모르니 현감이라도 그는 파리 목숨이었다. 책상에 놓인 다른 지역의 첩보와 관찰사의 지시사항을 내려다보던 현감이 물었다.

“어느 쪽이 김기범인가?”

“제가 김기범입니다.”

“금번 향시에서 소요를 일으킨 발단이 김기범에게 있다는데 맞는가?”

“인재를 선발하는 과장에서 부정을 일삼고 공정의 책무를 져버린 시관들이 방조하므로 시정을 도모하였습니다.”

기범이의 말을 듣던 현감이 일을 처결하였다.

“말하는 것을 보니 육조판서의 본세로구나. 과거는 나라에서 시행하는 행사인데 소요를 일으켰으니 민란에 버금가는 사태다. 그러나 소요는 잠깐에 그치고 다시 향시가 치러졌음을 감안하여 특별히 선처하는 것이니 장 삼십 도를 달게 받도록 하라. 다음으로 그대가 전병호인가?”

“그렇습니다.”

“김기범이 소요를 일으킬 적에 만류하지는 못할망정 합세하여 일을 커지게 하였으니 이는 국법을 어지럽힌 일이다. 사실과 다른 점이 있는가?”

아무리 다른 고을과 첩보를 주고받았다 하나 일의 전말을 이토록 소상히 알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이양선이 나타나면 호들갑 떨며 도망치기 바쁘지만 그런 자들에 의해 지탱되는 나라라도 그 빠르기와 촘촘함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법을 어지럽힌 책임은 향촌의 거자들이 아니라 과장의 안전과 공정에 기여하지 못한 경시관과 시관에게 있으며, 한성시에 응해야 하나 농토를 연고삼아 향시에 응한 자들에게도 있으며, 또한 그들을 그리하도록 주선하고 부추긴 고관대작들에게도 있으며, 자파세력을 충원하는 자리로 과거를 전락시킨 붕당의 무리에게도 있으며,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감독하여야 할 성상께서도…….”

현감이 책상을 내리쳤다.

“닥쳐라! 네 어찌 찢어진 입으로 성상을 욕보이느냐? 태인과 전주의 백일장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다 하기로 선처하려 했다마는 말마다 방자하구나. 생각 같아선 변방의 수자리에 처박고 싶다마는 성상께서 선처를 당부하시고 젊은 선비들의 혈기를 도리어 칭송하신 대원위 대감의 분부가 있어 곤장으로 처결됨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다. 전병호에게는 곤장 이십 도를 내리도록 하라.”

“과폐를 지적했을망정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이리 처결하시니 관장께서도 거벽 사수의 도움으로 거기 계시나이까?”

“그 주절대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구나. 저놈도 삼십 도를 내려라.”

나장들이 둘의 괴얄띠를 풀더니 엉덩이가 보이도록 바지를 훌러덩 깠다. 그런 다음 형틀에 엎드리게 하고 팔과 발목에 오라를 감았다. 장을 치는 곤에는 다섯 종류가 있으니 치도곤이 길고 너비도 넓었으며 도범(盜犯) 같은 중수에게 사용하였다. 다행히 이날 준비한 것은 길이 다섯 자에 너비 네 치인 소곤이었다.

“이보시오, 나장님네들. 같은 고을에 살기로 살살들 하시구려.”

장이 떨어지기 전에 기범이가 위에서는 못 듣게 조용히 당부하였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병호가 쩌렁하게 외쳤다.

“국법을 시행함에 엄하게 하시오.”

“허리 부러지니 움직이지나 마시우. 장 맞고 고자 된 사람도 여럿 봤수.”

나장 가운데 한 사람이 이르는 사이 둘의 둔부에 장이 들러붙었다. 이어 곤이 쳐들리는데 엉덩이에 시뻘건 자국이 선명하였다. 다시 곤이 떨어지자 앞서 난 자국이 더욱 선연해지고 세 대 네 대가 연이어지자 살이 부풀었다. 이윽고 다섯 대가 넘어간 다음부터 기범이의 입에서는 애고대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나와 치는 나장들이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애당초 한 번에 삼십 도 이상은 치지 못하게 하고 사흘 안에 다시 시행치 못하게 형률에 규정한 것은 그만큼 장형이 가혹하기 때문이었다. 곤장 한 대에 장사(杖死)한 사람도 있었다 하니 그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나장들은 이들이 매 맞는 사연을 아는지라 요령껏 치건만 스무 대가 넘어가자 피가 튀었다. 나장들이 이번에는 터지지 않은 쪽을 골라 치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온 엉덩이가 붉어져 더 때릴 곳이 없었다. 장난처럼 시작된 기범이의 앓는 소리는 어느덧 들리지 않게 되었는데 흥도 없거니와 정신이 아뜩해진 탓이었다. 장형이 끝나자 반쯤 정신을 놓은 두 사람은 이빨 새로 신음을 흘려보냈다. 나장들이 그들의 바지를 추켜 대충 괴얄띠를 묶어주자 엉덩이 쪽으로 피가 번졌다. 현감과 서리들은 사라진 뒤였으며 걸음을 떼지 못하는 그들을 나장들이 부축해 객사 앞으로 끌어냈다. 기창이 마차 끄는 마부와 노상에 서 있다가 그들을 이불 깔린 수레에 엎드리게 하였다. 기창은 둘의 엉덩이에 막 돋기 시작한 파초 잎을 으깨어 황토에 버무린 반죽을 두툼하게 발랐다.

지금실에 도착하여 기범이는 제 집 안방에 엎드리고 병호는 약재가 쌓인 방에서 요양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애를 쓴 사람은 기창이었다. 그는 황토와 파초 잎을 개어 두 사람 엉덩이에 연신 바꾸어 얹고 여염집을 돌며 뒷간에 고인 맑은 물을 구해 걸러 마시게 하였다. 트림을 할 때마다 방안에 똥간 냄새가 퍼졌지만 그 덕인지 두 사람은 얼마 후부터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그로부터 병호와 기범이는 경서를 읽기보다 상두산에 올라 제겨차기며 곁차기 등 택견 동작을 연마하는 데 오히려 주력하였다.

6. 월백설백천지백하니(1872)

호남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좌도와 우도에서 올라오다 전주에서 만나 공주를 거쳐 천안삼거리를 지난다. 내려오는 길 역시 마찬가지인데 청주 지나 무주 남원 방면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에 한양을 출발한 필상이 진산을 경유해 전주 경계에 들어선 것은 희옥이와 지금실까지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설을 보내고 출타한 뒤 여름에 귀가하였으나 선선한 기운이 돌자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가 돌연 남하하였던 것이다. 그가 두어 달 만에 서둘러 내려온 것은 병호 일행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정월에 유랑을 떠나 병호나 기범이가 과거시험을 망친 일과 관아에 끌려간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그는 여름이 되어서야 사연을 들었었다. 또한 희옥이가 혼인한 것도 새로 알았는데 때마침 병호나 기범이가 굴신 못하던 때라 혼례에 참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희옥이가 급작스레 혼인을 하게 된 것은 몸져누운 아버지가 손주를 봐야겠다고 성화를 댄 탓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대근하다는 핑계로 눕기를 반복하던 그의 아버지는 겨울이 되자 좋다는 것을 아무리 해드려도 몸이 밭기만 하였다. 그러다 손주를 봐야겠다며 쉬파리처럼 성가시게 굴더니 나중에는 손수 매파를 놓아 고산의 처자와 혼인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고대하던 손주는커녕 잉태 소식도 들리기 전에 세상과 하직하고 말았으니 박복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병호와 기범이가 기동할 뿐 아니라 필상 또한 집에 와있을 때라 동무들은 상례에 참여해 상여도 메면서 지난봄의 결례를 벌충하였다.

필상이 봉상 구미리에 당도했을 때 희옥이는 출타 중이었다. 희옥이의 할아버지가 전주감영 아전으로 있을 때 다소 재산이 불어 일부는 소작을 주고 나머지는 직접 농사를 짓는데 추수가 끝나 소작료 문제도 마무리할 겸 집을 나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름에 상을 치르며 얼굴을 익힌 희옥이의 처가 필상을 맞아준 덕에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고 모처럼 밥다운 밥을 먹었다. 상을 물리고 숭늉으로 입가심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희옥이가 자빠질 듯 뛰어들었다.

“성님이 웬일이우?”

혼인을 하고 집안을 떠맡은 책임 때문인지 희옥이는 제법 의젓해보였다. 얼굴엔 그늘이 깃들었으나 집안 살림을 맡아서 안하던 일을 하게 되고 부부간의 사소한 차이를 알면서 생긴 피로였다.

“아우님 보고 싶어 왔지. 지금실에 좀 갔으면 하는데 괜찮겠는가?”

“괜찮다 뿐이오? 농사일도 끝났으니 어서 갑시다.”

“술이나 내오시게. 해가 졌는데 어딜 가겠는가.”

그제야 어둠이 내린 것을 알고 희옥이는 술을 내오게 하였다. 몇 달만의 상면인데다 필상이 밖에 나가면 가져오는 소식이 많아 동이 하나를 비운 뒤에야 둘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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