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좋은 사람

  • 입력 2024.02.04 18:00
  • 수정 2024.02.04 18:18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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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며칠 전에는 이틀 동안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다음날에는 한파경보로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닥쳤다. 영하의 기온에 벚꽃만 한 눈송이들이 거친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니 뾰족한 솔잎이 찌르는 것 같았다. 비닐하우스 안에 브로콜리를 파종해 놨는데 씨앗이 얼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삼한사온이었던 겨울 날씨 주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재작년의 일이다. 이곳의 대파는 11~1월 사이에 포전 매매가 이뤄진다. 농민이 중간 상인한테 연락해서 대파를 선보이거나 중간 상인이 대파밭을 둘러보고 먼저 판매를 제의하기도 한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수의 중간 상인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가격을 더 받기도 하고 덜 받기도 한다. 중간 상인은 대금을 지불하는 상인한테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상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친정 동네에 중간 상인을 하는 몇이 있는데 그중 한 언니의 중개로 대파를 팔았다. 포전 매매계약서는 쓰지 않고 구두계약으로 몇월 며칠까지 대파를 뽑기로 하고 계약금 일부를 받았다. 잔금은 대파를 뽑기 시작할 때 주는 조건이었다. 여름 가뭄이 심해 대파 작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시세가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물가를 잡는다고 무관세로 대파를 수입하자 대파 시세가 주저앉았다.

연말에는 농자재 외상값이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대파 판매 잔금을 받지 못하니 잠자리도 뒤숭숭하게 겨울을 보내야 했다. 연말에 갚지 못한 외상값은 늦어도 설날 전에는 갚아야 한다는 관례적인 기준이 있는데 계약이 무색하게 대파 잔금 지불은 하세월로 미뤄지기만 했다. 남편은 야무지게 나를 몰아세웠다. “나한테는 따박따박 잘도 따지면서 왜 그 사람(중간 상인 언니)한테는 한마디 못 하고 쩔쩔매냐”고.

몇 차례는 부드러운 어조로 중간 상인 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언제쯤 작업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대파 시세가 내려앉아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중에는 작업비를 건질 수 없는데 어떻게 대파를 뽑겠냐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모르던 사람이었다면 내 입장을 먼저 주장할 수 있지만 그동안의 친분 때문에 야멸차게 대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러는 사이에 외상값 독촉을 받아야 했고 생활도 엉망이 되고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다.

3월이 되자 대파에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다시 다른 작물을 파종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남편이 중간 상인 언니와 큰소리를 내며 싸우게 됐다. 남편은, 다음 농사를 못 짓게 되면 배상하라고 주장을 했다. 나 또한 중간 상인 언니와 관계가 어그러질 수밖에 없는 말을 쏟아놓게 되었다.

무척이나 어렵게 대파 잔금을 받았고 대파도 뽑아가긴 했지만 중간 상인 언니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다. 나이도 적은 내가 손위 언니한테 심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는 얼굴을 안 보고 살 수 없어서 사과는 받아 주지만 너나 네 남편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고 했다. 나는 그 언니에게 좋은 사람임을 포기함으로써 가족을 지킬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란, 친분이 있으며 나에게 이익이 되고 편리를 도모해 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온 국민이 아는 몇 가지 범법행위를 했음에도 검찰 조사도 받지 않고 있다. 검찰 출신의 남편이 철통방어를 해 준 덕분이다. 김건희 여사에게 윤석열이라는 남편은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형평성과 공정성에 억울한 대다수 국민에게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인이다. 사사로이 남편으로서 좋은 사람이고자 한다면 공인의 신분을 내놓고 알콩달콩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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