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각성과 저항

  • 입력 2024.02.04 18:00
  • 수정 2024.02.04 18:1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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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프랑스를 비롯해 온 유럽은 대륙 전체가 농민들이 일으킨 대규모 무력시위로 뒤숭숭하다. 나라마다 입장과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간의 노선을 최대한 수정해가면서까지 농민들과 의견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는 20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합의에 다다랐던 남미 메르코수르와의 FTA 협상을 중단하려고 하는 상태다.

현지에선 프랑스 정부와 마크롱 대통령이 농정에 대한 장기적 관점 없이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대 메르코수르 협상을 공격하고 있다는 시선도 없지 않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으나, 농민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비교적 생각의 격차가 크지 않은 협상 반대를 고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좌우 진영의 농민들 모두가 공통으로, 또 강하게 원하는 지점이 바로 FTA 체제에서의 탈피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배경에도 수입농축산물과의 불공정한 경쟁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관계부처 장관들 역시 메르코수르 FTA의 불공정성에는 반대하지만 FTA 체제 속에서 먹거리 공급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 역시 함께 밝히고 있다. 배경은 어쨌든, 이 나라 정부는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자국의 식량주권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특히 수입산 식품과의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허락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이를 대통령과 농무부 장관이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은 우리 농민들이 보고 부러워할 만한 내용임에 틀림없다.

최근 몇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수많은 FTA를 체결했고 이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농민들이 때론 몸을 날려가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로부터 단 한 번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물며 프랑스 같은 농업선진국도 먹거리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 민관이 함께 공감하고 협상을 지속하는데 우리나라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물가관리’ 일변도 기조에 우리가 협상에서 지켜낸 것 그 이상으로 ‘알아서’ 시장을 개방하는 할당관세 수입정책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언론은 이에 편승해 농민·농촌·농업을 수없이 때리기에 더욱 여념이 없고 우리 농산물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옹호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인이 각성하고, 농민들이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농업은 종말로 더욱 더 전진할 것이다.” 프랑스 농민단체들 중 한 곳이 봉쇄행동에 나서며 밝힌 입장이다. 저가 농산물의 무분별한 수입 이외에도 프랑스에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다양한 농업문제들, 예컨대 유통구조 및 생산비 보장의 문제·각종 규제로 인한 피해 등은 우리나라 농민들 역시 처절하게 겪어 내고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엔 정책과 언론의 각성도, 농민의 단합된 저항도 보이지 않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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