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멀고도 험난한 여성농민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보장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7
  • 기자명 조경희(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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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전북 김제)
조경희(전북 김제)

지역에서 여성농민회 회원 분들과 대화하면 여성농민의 지위 보장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농민의 지위 보장은 무슨 의미일까? 1년 내내 가정 살림은 거의 도맡아 하며, 농사철에는 남편과 함께 논밭에서 일하고, 텃밭 농사나 일부 밭작물의 경우 어떤 도움도 없이 오로지 맨몸 하나로 영농활동을 하는 여성농민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말이나 선언이 아닌 ‘법’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요구이며,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 아픈 일이다.

지금 농촌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현실적으로 농업소득만으로는 농가경제를 지탱하기 어려운 여성농민들이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탬을 주고자 부업으로 직장을 갖고 국민건강보험에 직장 가입자로 가입돼 있는 경우, 농업경영체 등록부의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이것은 크고 작은 불이익으로 나타나며, 나아가 농협을 비롯한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작용한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알기 위해 관련된 법률들을 찾아봤다.「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상위법에 해당하는「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동법의 시행령, 시행규칙을 찾아봤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는 법률을 하나씩 찾아 읽어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여성농민의 공동경영주 등록을 제한하는 법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홈페이지의 ‘농업경영체 등록기준’에 가족원인 농업인의 농업경영체 등록기준의 ‘(3)「국민연금법」제8조의 사업장가입자 또는「국민건강보험법」제6조의 직장 가입자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한 자(단, 18세 미만 제외)’ 에 의해 제한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제한 기준이 만들어진 근거와 취지는 무엇일까? 직접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농업경영체등록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 확인해보니 ‘농업인확인서 발급규정’을 근거로 했다는 답변과 함께, 공동경영주는 사실상 농업종사자로 보기 때문에 생긴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농업인확인서 발급규정은 상위법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부합하는 것인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명시된 여성농민 관련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27조(여성농업인의 육성)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업정책을 세우고 시행할 때에 여성농업인의 참여를 확대하는 등 여성농업인의 지위 향상과 전문인력화를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시행하여야 한다.

② 정부는 여성농업인이 농업경영 등에 참여하거나 기여한 정도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시행하여야 한다.

위 기본법에 이와 같은 조항이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싶지만, ②호의 ‘참여하거나 기여한 정도에 상응하는’이라는 문구가 사뭇 거슬린다. 여성농민은 참여하거나 기여한 정도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문제의식은 차치하더라도, 위 법 조항에 따르면 현재 농업경영체 등록 시 여성농민을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는 데 있어 차별적 제한이 있는 규정과 기준을 두는 것은 기본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편 지난해 국회입법청원으로 제정을 요구한 농민기본법에는 여성농민의 지위 보장을 어떻게 명시했는지 찾아봤다. 농민기본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 선포되고 시행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지만, 이 법에서는 제51조(여성농민에 대한 동등 대우), 제52조(여성농민의 평등권 보장), 제53조(가족농 구성원의 평등한 권리보장)의 각 조항에 여성농민에 대한 어떠한 차별과 제한도 없이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여성농민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보장을 말이나 선언으로 그치면 안 되듯 농민기본법 제정도 선언과 투쟁구호에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이다. 어쩌면 농민기본법 제정이야말로 멀고도 험난한 여성농민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보장을 가장 빠르게 실현하는 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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