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명카수’가 되는 길⑦ 아무도 그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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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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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의 쇼 공연이 활발해지면서 유명 스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서울의 경우 남대문의 자유극장, 청량리의 오스카 극장, 영등포의 연흥극장, 종로4가의 한일극장, 청계천의 천일극장과 바다극장 등이 쇼 공연의 메카로 소문이 났다. 그러다 보니 유명 스타들의 겹치기 출연이 성행했는데…. ‘인기 스타’가 제 시각에 안 나타나면 난리가 났다.

-여러분, 하늘과 땅 사이에 뭐가 있는 줄 아세요? 예? 뭐라고요? 공기가 있다구요? 틀렸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과’자가 있습니다. 우습지 않으세요?

-야, 사회자, 집어치워! 남일해는 왜 안 오는 거야! 돈 도로 내!

-남일해씨 금방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금 극장 계단 올라오고 있답니다!

사회자는 어설픈 코미디가 통하지 않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느라 진땀을 흘리는데, 뒤늦게 나타난 유명 스타가 둘러댄 핑계는 한결같았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바로 오는 길인데 교통이 막혀서….”

당시만 해도 ‘방송 출연’이라면 대단히 막중한 것으로 인식을 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관객들도 양해를 하고 넘어갔다. 사람들이 그만큼 순진했다는 얘기다. 버라이어티 방식으로 성행하던 극장 공연은, 70년대 들어 남진과 나훈아라는 두 걸출한 가수가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요즘이야 인기 절정의 가수가 먼저 부르고 훌쩍 자리를 뜨기도 하지만, 그때는 맨 끝 순서로 출연한 가수가 그날의 최고 인기 가수인 걸로 돼 있었다. 한 번은 춘천 공연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고 김미성씨는 회고한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김추자와 <새타령>으로 명성을 떨치던 김세레나가 출연현장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어요. 순서에는 김추자가 피날레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두 사람이 딱 마주치더니 서로 나중에 부르겠다고 다툼이 벌어진 거예요. 그러다 김세레나가 그냥 서울로 가버렸어요. 그 바람에 난리가 났지요.”

이제 다시 김미성 아니, 김미숙 얘기로 돌아가 보자. 쇼 공연단을 따라다니면서 노래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사회자 노릇도 하면서 지내는 사이에 그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갔다.

그 시절 그녀의 유일한 꿈은 극장 간판이나 광고전단에서, 맨 위쪽에 커다랗게 자신의 얼굴이 올라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저만치에 멀리 있는 ‘꿈’이었다.

“군부대 위문 공연을 가잖아요, 제가 사회도 보고 코미디도 하면서 공연을 진행한단 말예요. 그런데도 끝나고 나면, 방송으로 일찍 이름이 알려진 이순주한테는 장군들이 와서 악수를 청하고 난린데, 제 주변은 뭐 썰렁하지요. 그렇게 지내다가…결혼을 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갑자기 결혼을? 나는 다소 당황했지만, 뭐 연예 기사 쓰자고 만난 게 아니었으므로 그쯤에서 넘어갈 요량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 훨씬 이전…내가 열아홉 살이었을 때부터 사실혼 관계로 지내온 남자가 있었어요. ‘타미 김’이라는 예명을 가진 매니저였는데 유명가수들을 많이 발굴한 사람이에요. 타미 김은 몰라도 1960~70년대에 그가 발굴한 가수 이름을 대면 다들 알 거예요. <달구지>를 부른 정종숙, <터질 거예요>의 듀엣 김씨네, <미련>의 장현…이런 사람들이 다 그가 발굴한 가수들이에요. 그런데도 내가 노래하는 건 한사코 못 하게 말리더라고요.”

이제 누가 봐도 그의 ‘명카수의 꿈’은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런데, 편안히 집안 살림이나 하라는 남편의 요구를 거절한 채, 그는 기어코 가수가 되겠다며 이혼을 해버렸다. 그 때문에 쇼단의 동료나 후배 연예인들이 번갈아 가며 그의 아이를 돌봐야 했다.

어느 날, 여전히 가수들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던 옛 남편을 찾아갔다. 그가 대뜸 말했다.

-판을 내야겠어요.

-아니, 판을 내야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레코드, 판 몰라요? 당신 작곡가들 많이 알잖아요. 곡 좀 받아서 나도 취입할 수 있게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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