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해충에 ‘무방비노출’ 친환경 과수농가 “친환경 재해보험 절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유기과수위, 재해보험·방제 영역 정책적 소외 대응방안 논의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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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정부환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유기과수위원장이 지난 2018년 초겨울 경남 산청의 유기농 배 농장에서 전지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한 해도 온갖 병해충에 맞서며 농사지었던 정 위원장 등 친환경 과수 재배농민들은 `친환경 농작물 재해보험'의 필요성을 언급 중이다.
정부환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유기과수위원장이 지난 2018년 초겨울 경남 산청의 유기농 배 농장에서 전지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한 해도 온갖 병해충에 맞서며 농사지었던 정 위원장 등 친환경 과수 재배농민들은 `친환경 농작물 재해보험'의 필요성을 언급 중이다.

기후위기로 과수농가들의 병해충 피해도 심화되는 가운데, 친환경 과수농가들은 그 피해를 사실상 고스란히 껴안는 형국이다. 이를 감안해 △친환경 과수농가 상황에 맞는 재해보험 설계 △친환경농가 입장을 고려한 방제 실시 등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강용, 친환경협회) 유기과수위원회(위원장 정부환, 유기과수위) 소속 과수 재배농민들은 지난 22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를 방문해 친환경 과수농가 상황에 맞는 농작물 재해보험 설계 필요성을 촉구한 뒤, 세종시 친환경협회로 이동해 향후 대응책 논의를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선 최근 심화되는 기후위기로 인한 병해충 증가 양상을 공유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된 병해충은 노린재였다. 경남 산청에서 배농사를 짓는 정부환 유기과수위원장은 “과거엔 4월 넘어가고서 노린재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젠 기후위기로 인해 3월부터 노린재 피해가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밝혔으며, 전남 함평의 박창범씨(유기과수위 배분과)는 “최근 논콩 재배가 늘어나면서 (콩류에 큰 피해를 주는) 노린재 개체 수도 늘어났고, 그로 인한 친환경 과수농가 피해도 커졌다. 노린재 피해는 거의 모든 과수농가가 공통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포도농가의 경우 특히 미국흰불나방에 많이 시달렸다. 전북 정읍의 한경수씨(포도분과)는 “지난해 미국흰불나방이 갑자기 나타나 포도 농가들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국흰불나방이 나타나면 포도나무가 사실상 초토화된다”고 심각성을 강조하며 “그밖에도 흰가루병·그을음병 등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정작 그럼에도 친환경 과수농가는 그에 합당한 방제 조치를 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이다. 박창범씨는 “일반 과수농가는 농약을 쳐서 병해충 피해를 그나마 경감시킨다지만, 친환경 과수농가는 농약을 치지 않으니 지자체에서 항공·드론 방제 등을 해준다 해도 사양한다. 따라서 친환경 과수농가는 병해충으로 인한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친환경 약재가 있긴 하나 농약에 비해 효과가 약해서 충분한 효과를 누리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유기과수위원회 소속 과수 재배농민들은 지난 22일 세종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회의실에서 친환경 과수농가의 정책적 소외문제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유기과수위원회 소속 과수 재배농민들은 지난 22일 세종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회의실에서 친환경 과수농가의 정책적 소외문제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충북 음성 농민 최병국씨(사과분과)는 사과·복숭아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히는 복숭아순나방과 관련해 “복숭아순나방은 어떤 농약을 적기에 쓰느냐에 따라 90% 수준까지 방제가 가능한 해충이다. 그러나 친환경농가 입장에선 복숭아순나방을 방제할 수 있는 약이 없다”면서 “석회보르도액 등 그나마 친환경 사과농가 입장에서 활용 가능한 약재에 대해 현장 농업기술센터·연구소 등에선 실험 한번 해 본 적 없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이런 열악한 재배환경 속에서 6년 전 30여 농가였던 지역 내 친환경 사과 재배농가가 현재는 3~4농가 밖에 안 남았다는 게 최병국씨의 설명이다.

물론 선도농가가 확보한 친환경적 방제 기술이 있다지만, 당장 다수 농가에서 실천하기엔 부담이 적지 않다. 방제 기술이 효과가 있는지 ‘실험’ 해봐야 하는데, 수년에 걸친 실험 과정의 수확량·소득 감소는 책임져 줄 곳이 없다.

요컨대, 친환경농가는 농약을 치지 않음으로서 방제 가능하거나 그나마 피해를 경감할 여지가 있는 병해충을 고스란히 받아안는 셈이다. 당연히 병해충 피해는 일반 과수농가보다 클 수밖에 없고, 파치(소위 ‘못난이’) 비율도 늘어난다. 학교급식 과수 공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유기과수위가 농식품부를 다녀온 것도 이상의 현실을 거론하며 재해보험 영역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농식품부의 요구는 일단 ‘데이터’를 모아오라는 것이다. 친환경 과수농가들의 농산물 출하가격, 일반 과수 대비 생산량 차이, 병해충 발생 시 생산 감소량 등의 데이터를 의미한다. 유기과수위 회원들은 각 과수분과별로 데이터를 모아 향후 종합적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각 과수분과에선 향후 재해보험 특약 사항 마련을 위해 농식품부에 제안할 병해충 목록을 추렸다. 배분과에선 흑성병·적성병과 깍지벌레·노린재를, 사과분과에선 복숭아순나방·복숭아심식나방·노린재를, 포도분과에선 미국흰불나방·깍지벌레·애매미충 등을, 감귤분과에선 깍지벌레·노린재 및 더뎅이병·궤양병 등을 거론했다.

한편 이날 유기과수위 회원들은 최근 각 지자체들의 광역 방제 과정에서 친환경농가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항공·드론 방제 시 잔류농약 비산(飛散)으로 친환경농민이 당하는 인증취소, 피해를 우려해 방제를 거부함에 따라 인근 일반농가들과 겪는 갈등 등이 피해 예시였다.

정영기 친환경협회 교육국장은 이와 관련해 “경북 포항시에선 공동방제 진행 시 친환경 약재를 사용한다. 포항시친환경농업협회 차원에서 포항시의원 등에게 문제를 제기해 친환경 방제가 가능하도록 예산을 마련했기 때문”이라며 “지역 친환경협회 차원에서 시군·도의회 등에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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