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마을회관에 모인다는 것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7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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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윤*야, 우리 마을에 교육 좀 와라.”

“네? 요즘 마을에 다른 교육 안 오나요?”

“아직까지 교육해준다는 연락이 하나도 없어.”

“알겠어요, 언니 그런데 무슨 교육을 받고 싶은데요?”

“그, 비누 좀 만들어보자.”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많은 일들 속에서 한 달을 훨씬 넘긴 오늘에서야 천연비누 재료들을 준비하여 마을교육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교육 받을 사람들이 좀 많다’는 말에 대거 귀농귀촌한 분들이 있었나, 의아해하며 갔는데 마을회관에서 만난 여성농민들은 다 60세를 넘겼고 많다는 수는 13명.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싶은 마음으로 왔는데 이게 뭐냐고 물으니 다들 웃습니다.

쌀농사 짓는 집들이 많아 대부분의 마을 분들이 김장을 하고 난 후 못자리하기 전까지는 아침 밥 잡수시고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해 잡수시고 남은 밥으로 저녁까지 잡수시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모여 밥 잡수시는 것 빼고는 할 게 없어서 화투를 쳤고 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십원짜리 동전 몇 개를 가지고 맹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화투 외의 다른 일들을 없을까 궁리해보곤 하였습니다. 여성농업인센터를 운영하며 대부분의 여성농민들이 힘들게 이동하는 조건, 마을회관에서 두 끼 식사까지 해결하는 농촌의 조건을 고려해 우리 실정에 맞는 사업은 마을회관을 방문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화투하다 싸우시는 분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혼해 14년을 살면서 아이 둘 낳아 키우고 마을의 경조사들도 함께 치렀고 동네 태생이 아닌 남편에게 이장도 맡겼던, 제 이름보다는 우리 아들의 이름으로 저를 불렀던 마을. 겨울이면 문안 인사하듯 방문교육을 진행해 같이 박수치고 노래 부르며 체조를 했습니다. 새로운 교육을 진행할 때마다 찾아가 교육을 진행하고 교육이 재미가 있었냐, 만든 것은 좋으냐, 유용하냐를 물었습니다. 그러다 보건소와 노인복지관 등에서도 마을방문 교육을 온다고 했고 맨날 화투만 치다 싸우시는 것보다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 싶었습니다.

평화와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코로나19가 터졌고 마을회관은 문을 닫았습니다. 겨울이면 보일러 기름 값 아낀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고 여름이면 일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누워있던 곳, 두 끼의 식사까지 해결되고 박수치고 노래 부르며 체조로 몸을 풀었던 곳이 문을 닫으니 마을 사람들은 겨울에는 추위에 굳어갔고 여름에는 더위에 시들어 갔습니다. 반찬 한두 가지와 전기밥통에 며칠 동안 앉혀진 밥을 꾸역꾸역 드셔야 했습니다. 누군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면 이웃도 피하면서 두문불출하였습니다.

코로나 3년 동안 그렇게 살면서 어떤 분은 요양병원에 계시다 면회 못 오는 자식들이 당신을 버렸다고 여기며 삶의 희망을 놓고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경우 바르고 똑부러진다고 제가 감탄했던 분은 치매에 걸려 비 오는 길을 돌아다니셨습니다. 다른 분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고 또 다른 분은 어깨를 수술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점심도 잡수시고 회관에 들여놓은 운동기계로 운동도 하십니다. 오랜만에 마을회관에 가서 젊은 사람들 많이 있다는 13명의 여성농민들을 만나니 울컥한 마음이 듭니다. 머리는 더 희어버렸고 얼굴의 주름은 더 많이 패여버렸고 허리는 더 굽었지만 그래도 웃으며 만날 수 있어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울컥한 마음,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을 떨면서 설명하고 우스운 이야기를 덧붙이고 글리세린 바른 손을 만져보라며 양손을 내밉니다. 비누가 굳는 동안 스트레칭을 같이 하며 마을회관에서 하루 10분씩 같이 연습하라고 숙제도 드립니다. 언제 가실지 모르지만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아프지 말고 웃으며 살자고 아양도 떨어봅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그녀들에 대한 응원입니다. 코로나19 끝나자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비행기 타고 이리 저리 놀러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다시 열린 마을회관에서 농한기를 보내며 행복해하는 그녀들, 그녀들의 웃음 띤 얼굴을 위해 천연비누의 아버지, 천연비누의 할아버지라도 만들어 드리고 싶은 제 마음입니다. 우리들은 마을회관에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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